배우 송종호(37)는 최근 종영한 SBS 20부작 '수상한 가정부'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한 뼘 넓혔다. 그는 사랑하는 최지우(박복녀)를 차지하기 위해 화재사고로 그의 남편과 아들을 죽인 서지훈 역을 맡아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9회에 처음 등장해 살인범이란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투자회사 대표 장도형이란 신분으로 최지우에게 접근해 자상함과 섬뜩함을 오가는 이중인격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최지우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자 같이 죽자"며 창고에 불을 지르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소름끼치게 했다. 결국 최지우의 남편과 아들을 죽게 한 죗값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결말을 맞았다. 1995년 모델로 데뷔한 송종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07)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09) '응답하라 1997'(12) 등에서 보여준 반듯한 '전문직 훈남 전문 배우' 이미지를 제대로 벗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수상한 가정부' 속 광기어린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실감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송종호는 "서지훈은 '엄친아'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어 선택한 인물"이라며 "연기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은 많다. 하지만 또 다시 악역을 맡으면 더 악랄하고 못되게 연기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상한 가정부' 방영 전 KBS '직장의 신', MBC '여왕의 교실' 등의 일본 드라마가 전파를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감독님에 대한 믿음, 캐릭터들의 신선함 때문이다. 김형식 PD님과는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07)와 '카인과 아벨'(09)을 함께 하면서 믿음을 쌓아왔다.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수상한 가정부 속 캐릭터들이 개성 넘쳐 마음에 들었고 내가 맡은 역할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단순한 싸이코 캐릭터에서 진화된 인물이라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지만 인물 구성 등이 타 작품에 비해 굉장히 새롭더라."
-원작은 봤나.
"안봤다. 그걸 보면 나도 모르게 모방 할까봐 일부러 안 본거다. 내가 만든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외과의사 봉달희'(07)로 데뷔한 이래 첫 악역 아닌가.
"맞다. 욕심이 나서 의욕적으로 찍었는데 끝나고 나니 아쉬운 것 투성이다. 최지우 선배를 보며 '저 여자를 내가 사랑한다. 갖고 싶다'고 스스로 체면을 걸었다. 조금씩 인물에 녹아들며 적응한 것 같다."
-캐릭터 몰입이 흠들진 않았나.
"작품을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몰입됐던 것 같다. 이해하기 보단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감정에 욕심이 더해지면 병적인 집착으로 변한다'고 되뇌이며 스스로 합리화했다."
-최지우를 바라보는 촬영 전·후 시선.
"톱스타라 지레 '차갑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데뷔 전부터 좋아하는 배우라 떨리기도 했고. 처음 촬영장에서 대면했을 때 '와! 최지우다'하고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근데 막상 대해보니 정말 착하고 순수하시더라. 연기할 때 배려심도 깊고 세세한 호흡까지 신경 써 주시는 게 마음으로 느껴졌다. 촬영 스케줄이 빡빡해 모든 배우들이 체력적·정신적으로 지쳐있었다. 이성재 선배도 그렇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현장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걸 보고 '역시 선배들은 다르구나'를 새삼 느꼈다."
-정말 사랑해서 집착해본 적이 있나.
"20대 때는 여자친구의 옷차림을 많이 간섭했었다. 예를 들어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오면 '갈아입고 와'라고 할 정도였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30대가 된 뒤엔 그러지 않는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든 건 나도 좋으니까."
-김우빈·김영광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이 많아졌다.
"런웨이에 섰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보여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모델은 런웨이에서 한 벌의 의상을 입고 몇 초 안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 나는 모델 보다 연기의 표현 영역이 훨씬 넓은 것 같다. 표현해야 되는 감정이나 분위기가 몇 백 배 정도 되니까. 1995년 모델로 활동했을 당시 모델들은 다소 경직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연기자로 활동할 때 '실장님 캐릭터'에서 못 벗어나는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자유로워져서 그런지 연기를 할 때 통통 튀더라. 기럭지가 훌륭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데뷔 18년 차다.
"모델 데뷔한 것부터 18년차다. 하지만 배우 경력은 7~8년 밖에 안 됐다. 나이만 많을 뿐이지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5~6년 밖에 안 됐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땐 '어색해 보이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이 강했다. 이젠 '존재감은 있는 배우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거창한 수식어 보다는 자기 색이 확실한 배우란 평가를 받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