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모이어(52)는 콜로라도 소속이던 2012년 4월 샌디에이고전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령 승리투수가 됐다. 당시 만 49세였다. 주니치의 야마모토 마사(49)는 지난해 8월 야쿠르트전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일본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 또 ‘40세 이후 승리’ 부문에서 38승의 구도 기미야스(51·당시 요코하마)를 제치고 단독 1위(39승)로 올라섰다. 일본의 역대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은 1950년 하마사키 신지(당시 한큐)의 만 48세 4개월이다. 하마사키가 세운 나머지 최고령 관련 기록들은 대부분 구도에 의해 깨졌고, 이제는 야마모토가 구도의 기록을 넘어서는 형국이다. 일본 최다승(400승)과 최다 이닝 투구(5526) 기록은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경홍)가 갖고 있다.
모이어와 야마모토, 구도, 하마사키, 가네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투수 출장 1~3위인 제시 오로스코, 마이크 스탠튼, 존 프랑코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왼손투수라는 점이다.
◇롱런하는 왼손투수들
한국은 어떨까. 올시즌 현역 최고령 투수는 LG 왼손투수 류택현(43)이다. 그는 2014년 신인 선수들과 ‘두 띠동갑’이다. 류택현은 역대 최다인 899경기 출장 기록을 갖고 있다. 역시 좌완인 송진우(48) 한화 코치는 21시즌 동안 통산 최다인 210승을 올렸다. 현역 최다승인 삼성 우완 배영수(116승)와 94승 차이다. 또다른 왼손투수 구대성(45·시드니)은 한국과 일본, 미국을 거쳐 국내에 복귀했다가 은퇴 후 호주리그에 진출했다. 여전히 현역인 구대성은 이번 시즌 9세이브를 올려 이 부문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고령 승리와 최다 경기, 최다 투구 이닝 등 철완과 장수를 상징하는 기록들에서 우완에 비해 유독 왼손투수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좌완투수는 기본적으로 왼손타자를 상대로 이점을 지닌다. 류택현은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기용된다. 2013년 16홀드 평균자책점 3.07을 올린 그가 58경기 중 1이닝 이상을 던진 것은 두 번뿐이다. 전문가들은 큰 체력적 부담 없이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왼손투수의 롱런 비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송진우 코치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송 코치는 “원 포인트 릴리프는 언제 어느 순간에 등판할지 몰라서 항상 준비해야 하는 보직”이라며 “체력적 부담은 오히려 훨씬 크기 때문에 (그것이) 장수의 비결인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왼손투수의 롱런 비결을 바로 ‘왼손’에 두고 있다. “현역 생활을 할 때도 느꼈고, 현재 선수들을 가르치면서도 느끼는 점인데, 왼손잡이들이 오른손잡이보다 ‘손장난’을 잘 친다”며 “야구 공을 이리저리 만지고 쥐는 데 능숙해 변화구 습득과 구사에 유리하다. 나이가 들어 직구 스피드가 130km, 125km로 떨어져도 변화구 투수로 변신해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말했다.
◇왼손잡이가 유리한 이유
김영관 전남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왼손투수를 ‘서바이버(Survivor·생존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한 왼손잡이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다수의 틈에서 적응하고 생존하는 본능이 강하다"며 왼손투수가 '오래 살아 남는' 비결을 꼽았다. 이어 ”왼손잡이는 대부분 양손잡이다. ‘크로스 에듀케이션’(Cross Education·교차 학습)에 유리해 오른손 투수에 비해 (선수 생활에) 이득이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크로스 에듀케이션이란 주로 사용하지 않는 반대편 팔을 써도 주 사용 팔에 학습 효과가 있다는 뜻”이라며 “대부분 양손잡이인 왼손투수들은 주 사용팔인 왼팔에 부상을 당하거나 피로감이 있어 쓰지 못할 때도 오른팔로 훈련함으로서 왼팔에 대한 단련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양손잡이이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좋은 균형감각을 유지해 부상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왼손투수의 장수 비결에 대해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된 바는 없다. 삼성 왼손투수 장원삼(31)은 좌완의 장수 비결에 대해 “왼손잡이들이 사악하기 때문에”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하기도 했다. 김영관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왼손잡이는 직관력과 창조력, 감성적인 부분을 관장하는 우뇌를 사용하기 때문에 좀더 영악하게 타자를 요리할 수 있는 점에서 (장원삼의 말이)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