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팀 중 하나가 NC 다이노스였다. 오랜만의 신생 구단. 선수 입장에선 새로운 팀이 생길수록 좋다. 모기업이나 구단 운영 방식도 선배 팀들과 다르다. 이 팀이 잘 돼야 프로야구 전체에 활기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이태일(48) 구단 대표가 신망 있는 야구 기자 출신이라는 점도 타 구단과의 차이일 것이다. 이 대표와는 그라운드에서 몇 차례 마주쳤었다. 첫 만남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기자였던 그가 질문을 했고, 내가 대답을 했다. 이번 인터뷰는 정반대로 베이스볼긱 위원인 내가 그에게 질문을 한다. 베이스볼긱은 일간스포츠가 만든 모바일 야구신문이다.
- 오랜만입니다. 저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십니까.
“휘문고 이도형. 기억하죠. 휘문의 파란 유니폼. 1990년 봉황대기 군산상고전에서 친 우중간 홈런이 아직 생생해요.”
- 그 경긴 제게도 특별했습니다. 1학년 때였는데요, 후반에 교체 포수로 나갔는데 마침 제 타석에서 찬스가 왔어요. 전국대회 첫 출전이었던 것 같은데, 고교 시절을 회상하면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타구 방향까지 기억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워낙 잘 맞은 타구였으니까. 그리고 군산상고를 울린 안타였죠.”
(이 경기는 1990년 8월 10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봉황대기 2회전이다. 1-2로 뒤지던 휘문은 8회초 2사 1루에서 이도형의 비거리 100m짜리 우중월 투런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한다. 9회초 1점을 더해 휘문의 4-2 승리. 이도형은 7회말 수비에서 선발 이재신의 교체 포수로 라인업에 들어갔다. 휘문 3학년 진필중은 이 경기 선발 투수로 등판했고, 0-1로 뒤진 2회부터는 2학년 에이스 임선동이 마운드를 넘겨받아 경기를 마무리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 그 홈런 치고 <주간야구> 기자시던 이 대표와 인터뷰도 했죠. 프로에서는 경기장에서 몇 번 지나쳤던 것 같고. 오늘은 ‘기자’로 왔습니다. 그때와는 입장이 다른데요. 주간야구>
“돌이켜보면 전 기자 때 스타일이, 선수와 가까이에서 이야기하거나 한 적이 거의 없어요. 약간 떨어져서 보고, 그러면서 가끔 얘기 좀 하는.”
- 구단 사장으로 첫 시즌 치르고 난 느낌은 어땠습니까. 계획대로 됐던 것, 안 됐던 것이 있었을 텐데요.
“첫 번째 느낌은 ‘다행이다’. 김경문 감독이 시즌 전 미디어데이 때 ‘다른 구단에 누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어요. 나 스스로도 이 팀이 한국프로야구라는 리그의 일원이 됐는데 우리 때문에 ‘야구 수준이 떨어졌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점에 부담이 많았어요. 홀수 체제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도 우리가 가입했기 때문에 생겼죠. '무난하게 잘 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있었기 때문에, 시즌 뒤에는 ‘무사히 끝났구나’ ‘다행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것 같아요.
’계획대로 됐다‘라기보다는 기대했던 걸 얻었다고 하겠습니다. 선수들이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잘 마쳤다는 것, 신생팀답게 적극적인 플레이를 많이 했다는 것…. 새로운 팀이니까 무엇보다 신인왕만큼은 우리 팀에서 꼭 나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재학 선수가 너무 기특하고도 영광스럽게 신인왕을 해 준 것. 이런 것들이 희망적이었죠.
안 좋았던 점이라기보다는 부족했던 부분은, '역시 야구가 어렵구나', '페넌트레이스가 길구나', '정말 꾸준한 실력과 두터운 선수층이라는 게 필요하구나' 이런 걸 많이 느꼈죠."
- 초반에 저도 NC라는 팀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어요. 시범경기부터 봤는데, 시즌 시작하자마자 연패가 길어졌잖아요. 시범경기 때 느낌으론 ‘어,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싶었죠. '1승 하기가 정말 쉬운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심정은 어땠나요.
“비슷한 심정이었죠. ‘정말 1승이 어렵구나’. 우리가 개막전부터 롯데에 세 번 졌고, 다음에 대구에 가서 또 졌어요. 비 때문에 하루 경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세 번 질 걸 두 번 진 셈이죠. 잠실 가서 LG에게 두 번 더 졌는데, 일곱 번 지는 동안 그런 생각 많이 들었죠. ‘정말 1승이 어렵구나.’ 하지만 그때도 ‘1승을 하고 나면 2승은 좀 더 쉬울 거야’, ‘한 번 하기가 어렵지 하고 나면 나을 거야’라고 희망적인 생각을 많이 했죠.
4월 11일 잠실구장에서 첫 승을 했어요. 그날 사실 나랑 우리 단장이랑 퓨처스 경기를 보러 갔어요. 낮에. 나는 구리구장으로, 단장은 상무 경기에. 경기는 감독이 하는 것이고, 우리는 선수단이 지금 느끼는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를 해결해야죠. 그래서 (트레이드할) 내야수 찾으러 간 것이었죠.
나는 ***(요청에 따라 익명처리)를, 단장은 지석훈을 보러 갔습니다. 경찰청과 LG 경기였는데 하필 점찍은 선수가 출전을 안 했어요. 그래서 (구단 프런트에) 얘기도 못 꺼내고 있는데, 보니까 유니폼은 입고 왔다갔다하더군요. ‘오늘도 지면 LG 사장님께 얘기를 해 볼까’ 싶었는데 그날 이겼어요. 첫 승을 한 거죠. 그래서 좀 더 있다가 후자 쪽으로 트레이드를 했습니다.”
(NC는 지난해 4월 18일 투수 송신영과 신재영을 넥센에 보내며 박정준, 지석훈, 이창섭을 받는 2대3 트레이드를 했다.)
- 첫 승이라 기쁨이 더 했을 텐데, 축하 인사도 많이 받았죠?
“많이 받았죠. 문자, 카톡(카카오톡), 전화가 동시에 막 오는데, 우와. 그때 내가 그걸 알았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자와 카톡을 몇 대몇 비율로 쓰는지를. 진짜 많이 오더라구.
그때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도 3루 쪽에 있던 팬들, 마산에서 올라오신 팬들도 계셨어요. 그 팬들이 기뻐하셨습니다. 선수들, 감독도 마찬가지고. 나는 겉으로 잘 표현하진 않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혼자 생각하니까 굉장히 좋았어요.”
- 어렵게 1승 하고, 4월을 어렵게 보내고 나서, 5월에는 승률 5할을 넘겼습니다. 생각보다 꽤 일찍 반등에 성공했는데요.
“좀 쉬워졌죠.”
- 5월에 좋아진 게, 터닝 포인트가 될 일이 있었나요, 아니면 자연스레 안정을 찾아간 결과일까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고…. 외국인 선수들이 우리 팀에서 비중이 큽니다. 선발투수들이 한 턴씩 돌아가면서 우리나라 야구에 적응을 하고 타자들에 대해 잘 알게됐던 게 컸죠. 그리고 짧은 기간이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내야 수비가 좋아졌고…. 트레이드도 있었죠. 역시 외국인 투수들이 선발에서 안정을 찾은 게 가장 큰 이유 같아요."
- 6월에 손민한 선수가 가세하면서 분위기도 안정이 된 것 같았습니다. 손민한은 처음 NC에 갈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나서 한참 뒤에 입단을 했죠. 손민한 선수를 꼭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까.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이 있어요. 우리 팀, NC 다이노스라는 팀의 정체성은, 8개 구단으로 진행되던 리그에 들어온 아홉 번째 구단으로 야구 선수들이 좀 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팀이다.
손민한 선수 같은 경우는 본인이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상황이었어요. 2011년 11월말에 제주도에서 전지훈련을 하는데 손민한도 제주도에서 최향남 선수와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리 김경문 감독에게 야구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어요. 최일언 코치 앞에서 테스트도 받았는데, 자신이 먼저 몸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우리 팀의 정체성으로 봐서도 야구를 하고 싶다면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한 편으론 아직 몸이 덜 만들어졌으니 지금은 아니고 본인과 투수코치가 납득을 할 때 기회를 갖자. 이런 두 가지 생각을 했죠. 그게 1년 정도 걸리더라고요. 현역선수 등록마감일인 1월 31일을 넘겼습니다. 그래서 신고선수로 입단했고, 정식선수 등록이 가능한 6월에 1군 마운드에 오르게 됐던 겁니다. 퓨처스에서 뛸 때 관심을 갖고 진도가 어떻게 올라가고 있는지 투수 코치로부터 연락을 받곤 했는데, 굉장히 순조롭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손민한의 6월 성적이야 아실 테고, 0점대 방어율에 3승인가 해서 월간 MVP도 되고. 우리 팀 최초의 한국야구위원회(KBO) 월간 MVP입니다. 그 선수가. 엄청나게 고무적인 결과죠. 마운드에서 효과도 컸지만, 더그아웃에서 후배들에게 준 영향이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죠.
- 저도 프로에서 18년 생활했는데 몇 년도에 우리 감독이 누구셨고, 수석 코치가 누구셨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 ‘사장님이 누구셨지’라고 물으면 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선수 입장에선 ‘오너는 감독님’이라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사장, 단장님 어떤 역할과 일을 하시는지 프로밥을 오래 먹은 저도 잘 모릅니다. 구단 별로 조금씩 다르겠지만 설명을 해 주신다면요.
“사실 예전에 이 일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배우면서 일을 하고 있구요. 미국이나 일본의 좋은 사례를 보면서 이렇게 해야겠다는 참고는 합니다. 우리나라 역대 사장님 가운데 잘하셨던 분들도 계시니까 그 분들은 어떻게 하셨나 배워가면서 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그 야구를 쓰는 사람들, 팬이죠. 그 분들이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고, 즐겁고, 반갑고, 기다려지고 그런 느낌으로 썼으면 합니다.
그 야구를 만드는 사람인 사장, 단장이 누구인지 쓰시는 분들이 신경쓸 필요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당연하고, 모를수록 좋은 게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야구를 하는 사람들인 선수, 감독에 대해서 쓰는 사람인 팬이 관심을 갖고, 매료가 되고, 기다리고 하는 게 야구니까. 사장, 단장은 팬들에게 알려지기 보다는 팬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사람들인 선수 감독을 위해서 더 돋보이게 하느냐, 그게 사장이나 단장이 해야 할 일이죠.
우리 팀 차원에서도 그런 발전적인 모습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보다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우리 리그가 어떻게 긍정적인 발전하게끔 서로 협력하느냐. 이게 본연의 일인 것 같아요. 우리 구단이 다른 구단보다 전력이 월등해지고, 관중이 많아지고, 그런다고 해서 과연 프로야구라는 생태계가 더 좋아지느냐, 그것만은 아니거든요. 같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장으로 표현하면, ‘상대적 우월을 위한 경쟁’이 있습니다. 이건 리그에서 순위 경쟁을 하는 거겠죠. 여기에 더해 ‘절대적 발전을 위한 동반’이 있습니다. 프로야구에는. KBO가 커지려면 후자가 잘 돼야 합니다. 사장은 그런 역할에 힘을 써야 하지 않나, 리그가 잘 됨으로써 우리 구단도 발전하는. 상대적 경쟁을 통해 우위를 가리는 건 감독과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잘 해서 플레이오프에 나가는 것이겠죠. 사장이나 단장은 리그 발전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게 어떨까.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처음에 NC 멤버 구성할 때 어떤 구상을 했습니까. 어디에 중점을 두셨나요.
“NC소프트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 받고 일하면서 제일 처음 한 일이 창단 감독을 영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지금 우승을 할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우승을 안 할 건 아니다.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을 모셔와야 한다.
우리 김경문 감독 모셔올 때 가장 우선했던 가치는 ‘팬’이었습니다. 팬과의 소통, 팬을 위한 야구. 우리 나라 야구장 관전문화가 많이 변했어요. 승부에 집착하는 성향도 줄어들고, 파인플레이에 박수를 보내고, 경기에서 (결과 못지 않게) 과정의 의미가 더욱 커졌습니다. 특별히 ‘팬을 위한 야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팬을 위한 야구가 따로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감독이, 팀의 리더가 그런 개념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김경문 감독 만났을 때 의외로 굉장히 빠른…, 팀을 만드는 조건 중에 팬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이 분은. 팬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 우리 감독이, 비밀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경기 시작 전 애국가가 나오면 머릿 속으로 ‘아, 여기 모이신 관중이 내일 또 오셨으면 좋겠다, 그런 야구를 하자’ 이런 생각을 하신대요. 저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면 팀을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모셔왔어요.
그 연장선에서 우리 선수들이 승리에 집착하기보다는 명승부를 만드는 과정을 잘 해낼 수 있는 선수, 허슬하고 적극적인 성향이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물론 한국야구 선수 자원에서 성향을 기량에 우선해 뽑을 수는 없는 것 같구요. 일단 우리 팀의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그런 성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 그때 야구인 사이에선 ‘김경문 감독이 NC와 밀약을 하고 두산 감독직에서 물러난 거 아니냐’는 루머도 있었습니다.
“(2011년)6월 13일로 기억하는데, 김경문 감독이 그만 두신 날. 7월에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서 감독님 만났어요. 그때도 시즌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선 부담스러웠죠. 한 기자는 ‘미리 다 얘기된 거 아냐’고 묻기도 했어요. 결과가 그렇게 됐으니 그런 거지.”
- 저도 그때 생각을 좀 해 봤는데, 그럴 듯한 얘기더라구요. 김경문 감독님이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사표를 냈을까, 의문이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김경문 감독은 현역 감독이라 후보에 없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와 인연을 맺은 후에 김 감독이 엄청 부담스러워했어요. 그렇게 비춰질까봐. 김 감독에게 두산은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팀입니다. 8년을 감독으로 지냈고, 오너 가문에서 자신에게 잘 해줬다는 걸 알고 계셨죠. (영입 제의에) 처음엔 ‘노(No)’를 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설득을 한 거예요.
오시기로 결정한 뒤에도 ‘한 가지만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했어요. ‘뭡니까’라고 물어보니 ‘귀국해서 두산에 먼저 들러서 인사를 한 뒤에 NC로 오겠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하셨죠. 두산에 가서 인사하고, 저녁에 오너 가문 분들 만나서 양해 받고, 그 다음날 우리 회사로 인사하러 오셨죠.
두산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저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걸 잘 풀고 마무리하려 노력하셨습니다.”
- 프런트 구성은 어떻게.
“아, 어려웠어요. 타 구단은 모기업이 크니까 계열사에서 야구단을 희망하는 분들이 모이시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런 바탕이 상대적으로 좁으니까. 의외로 공개모집을 할 때 야구단에 와서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경험은 일천하지만 잠재력과 열정이 좋은 분들이었죠. 면접을 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프로야구가 한 세대를 지나니 그런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런 분들을 각 분야 별로 뽑았습니다. 경험이 필요한 부분, 가령 스카우트나 전력분석 쪽은 기존 구단에서 경험이 있었던 분들을 모셔오기도 했고. 그렇게 해서 구성을 했죠.
- 야구 쪽에 오래 계셨기 때문에 타 구단 신임 사장보다는 장점이 많을 것 같은데요.
“경영이나 조직 면에선 다른 구단 사장님들이 저보다 경험이 많고 능력이 좋으신 분들이예요. 야구계를 잘 아는 게 내 장점이라기보다 ‘난 초짜니까 배워야 된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 선수는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해요. 기자 생활 중에 ‘사장은 어떻게 해야 한다, 이런 건 하면 안 되겠다’는 게 있었나요.
“거창한 건 아니구요, 하나 있어요. ‘구두 신고 야구장에 들어가지 말자’. 그건 절대 하지 말자는 생각은 있어요. 운동장이라는 곳이 ‘신성’까진 몰라도 소중한 장소다.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고 모자까지 쓰고 단정하게 밟는 땅인데 내가 사장이라고 해서…. 선수들의 영역인 그라운드, 라커, 덕아웃에는 들어가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기자 입장에서 선수와 프런트를 볼 때, 지금 시선에서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응원하는 팀이 있고 없고. 이게 가장 큰 차이죠. 기자 시절에는 특정 팀을 응원하지 않고 ‘야구’를 봤어요. 지금은 NC라는 팀을 엄청 응원하면서 보죠.”
- 프런트 구성 고민했다고 하셨는데, 프런트에 선수 출신이 필요한 업무가 꽤 있죠. 선수 출신들을 조금 더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나, 선수가 은퇴 뒤 프런트 업무를 잘 하기 위해 이런 점을 준비했으면 하는 게 있으신가요.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일하는 야구라는 분야에서 그 일을 잘 하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야구를 잘 알아야 해요. 두 번째, 야구를 둘러싼 환경, 미디어든 인프라든 히스토리든, 생태계를 이해해야 하고, 세 번째는 그 구성원들, 사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선수 출신들은 기본적으로 첫 번째를 잘 알잖아요.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요. 야구와 관련된 프런트, 미디어, 협회 행정 등 여러 영역에서 가장 큰 이점을 갖고 있어요. 야구가 뭔지 아니까. 비선수 출신은 그걸 이해하는 게 어렵고, 또 다르죠.
그러니까 경기라는 관점에서 기량 발전에만 노력을 하기보다 두 번째 영역, 미디어일 수 있고 협회, 아마추어, 외국팀일수도 있고 다른 생태계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다면…. 세 번째로 야구계를 보며 ‘저 사람은 바람직한 모습이야’ ‘저건 부족한 모습이야’라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을 알게 된다면, 세 가지를 다 아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어떤 분야에서든지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수 출신들이 은퇴하든, 도중에 방출되든 했을 때 야구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그런 준비를 하면 굉장히 좋을 것 같아요. 우리 팀에서 선수가 유니폼을 벗게 됐을 때 우선적으로 당사자에게 물어봐요. ‘우리 팀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전력분석이 됐든 그라운드 보조가 됐든, 스카우트가 됐든. 먼저 물어보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기회를 줍니다. 바로 그 일을 하기 보다는 관련된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그렇게 해서 지금 몇 명은 우리 프런트에서 일하고 있어요.
- 퓨처스 선수 육성은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면요.
“아마추어 때까지 야구를 하면서 좋은 지도자, 선생님께 배웠겠지만, 프로는 또 다르잖아요. 퓨처스는 프로의 첫 단계고, 1군에서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보다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비슷하지만 목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치고, 잘 던지고, 잘 뛰고, 잘 받는 것보다 그것들을 ‘훌륭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 거기에 중점을 둬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남보다 잘하는 것보다 내가 잘 하는 것’. 그런 거죠. 자세와 태도, 생각이 바람직하게 만들어지는 걸 원해요. 치고 뛰는 거야 고교와 대학까지 다 했고, 1군에서 경쟁도 해야겠지만, 기본적인 사고가 퓨처스 기간에 준비가 잘 되면 좋을 것 같아요.
- 야구계에는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도 있지만, 저도 공감합니다. 감독, 코치님들이 기술적인 지도나 피드백을 해 줘도, 결국 선수 자신이 뭔가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팀이라는 큰 틀을 봤을 때는 ‘뛰어난 선수’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팀을 위해 뛸 수 있는 선수.
사실 기술이 뛰어난 선수는 많지만 인성 같은 부분에서 안 좋은 소리 듣는 이도 있고…. 야구 잘 하는 선수들이 조금만 더 잘해주면 야구가 더 훌륭해지는데…. 저도 야구인이지만, 야구인이 이기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베푸는 것에 약간 인색하다 싶기도 하고. 뛰어난 선수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야구가 단체 운동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운동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에 대해서는 내가 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그 말을 한 미국 사람에 의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가치가 오해되고 있는 것 아니냐, 순위가 낮거나 맨 뒤라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 반대로 우리는 일등이 목표냐, 좋은 사람이 목표냐라고 한다면 과연 무엇을 택할 것이냐고 되묻고 싶어요. 그리고, 실제로 진짜 훌륭한 사람은 꼴찌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 좋으면 꼴찌(Nice Guys Finish Last)’는 브루클린 다저스의 감독 레오 듀로셔가 1946년 라이벌 뉴욕 자이언츠에 대해 한 말이다. 듀로셔는 뒷날 자서전에서 “우리 팀 유격수 에디 스탱키를 칭찬하는 맥락에서 한 말”이라고 밝혔다. 그가 비난한 ‘좋은 사람’은 ‘경기에 져도 분해하지 않고 집에서 푹 잘 수 있는 태평한 선수’다. 스탱키는 신체 조건은 열악하지만 투지와 허슬플레이로 똘똘 뭉친 선수였다.)
- NC는 다른 팀보다 외국인 선수가 한 명 더 있는데, 관리 방법은 어떤가요. 국내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에 대해 ‘쟤네들만 뭔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종종 받거든요. 국내 선수와 차이를 두시나요, 아니면 똑같이 하시나요.
“외국인 선수도 팀의 일원이다, 가능한 한 국내 선수와 같은 조건에서 운동을 시킨다라는 전제를 갖고 있구요. 그리고 처음부터 ‘나도 쟤들과 똑같은 선수야’라는 생각을 가진 선수를 일단 뽑아요. 뽑을 때부터. ‘나는 한국 선수와는 달라’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선수보다 ‘NC라는 팀에 가면 그 일원이 되고 동료들과 같은 선수야’라고 생각할 만한 선수가 우선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한 명 빗나갔지.(웃음) 그 친구에 대해선 우리가 (대처를) 잘 못했는데, 중간에 미국에 돌아가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도 특별대우는 안 해 주려고 했어요. 그 친구 스타일에 맞춰 나머지 팀이 움직인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래서 중간에 결국 귀국을 시켰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로 그런 성향을 가진 선수를 뽑으려 노력했어요. 팀에 잘 적응하고 융화될 수 있는 선수. 그런 성격을 가진 선수.
(지난해 8월 NC 외국인선수 애덤 윌크는 2군행을 통보받은 뒤 트위터에 구단 운영에 대한 불만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그 직후 윌크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복귀하지 못했다.)
- 타 팀엔 외국인 코치가 몇 분씩 계시잖아요. 외국인 코치를 쓰지 않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예, 있어요. 코칭에 대해선 김경문 감독 의견을 존중하구요, 우리 감독님 생각이 ‘국내에도 좋은 지도자가 많다’입니다. 좋은 지도자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진종길이라는 코치를 아마추어에서 발탁하기도 했죠. 그리고 기회를 줘야 (지도자가) 만들어지지 계속해서 (외국에서) 갖다 쓰기만 하면, 좋은 지도자가 나오기 어렵죠. 다른 팀에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팀은 계속 국내 코치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생각입니다.”
- 저는 선수 생활하면서 기술적인 지도보다는 심리적인 피드백을 해 줄 수 있는 코치님이 더 필요하다고 여러 번 느꼈어요. 외국의 경우 멘탈 코치가 있는 팀도 꽤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기술적인 부분을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답하기 쉽진 않습니다. 다만, 기술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나눠서 판단하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수들이 좀 편하게, 덜 스트레스 받게 해 주는 방법이 뭘까는 고민하죠. 우리 코치들로부터 기술, 경기와 시즌을 치르는 노하우를 배우는데, 그 과정과 환경을 좀 더 잘 만들어줄 수 있는 건 뭘까라는 거죠.
전지훈련 캠프 갔을 때 미국에서 연수받고 있는 전직 선수들, 이종열이나 박찬호가 와서 캐주얼하게 선수들과 대화하는 그런 기회를 만든다거나. 넓게 해석하면 그런 것들도 이 위원이 말씀하신 걸 지원하는 부분 같아요. 나머지는 감독, 코치들에게 맡기는 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