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치 동계올림픽 때문에 밤잠 설친 분들이 많으리라 본다. 문득 동계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노라니 옛날 한강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50년대·60년대 서울엔 변변한 동계 스포츠 시설이 없었다.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겨울만 되면 한강이 얼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한강은 수질오염으로 잘 얼지 않지만 당시 한강은 서울시민의 든든한 동계 스포츠센터가 돼주었다. 아이스하키나 스케이트 경기도 한강에서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영하 20도 정도의 날씨로 웬만하면 얼음이 녹지 않았다.
그래도 어른들은 한강에서 스케이트나 썰매를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워낙 깊은 강인지라 날씨가 조금만 따뜻해져도 얼음은 금세 살얼음으로 변해 큰 사고로 이어지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강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고 하자 어머니께서 펄펄 뛰며 말리신 기억이 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하나뿐이었던 한강다리도 1966년 제2한강대교가 생기며 빠르게 늘었고, 이젠 더 이상 한강에서 스케이트나 썰매를 타지 않는다. 서울 시민에게 사랑받던 천연의 동계스포츠센터 한강은 겨울이 되어도 잘 얼지 않는 강이 되고 말았다.
내 나이도 칠십 가까이 되자 ‘한강이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하는 상념에 젖는다. 얼마 전 행사 때문에 미국을 방문했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됐다. 평소 바닷물과 강물이 섞여있어 잘 얼지 않던 허드슨강이 꽁꽁 얼어있었다. 미국 교포들도 허드슨강이 빙판으로 변하자 당황한 눈치였다. "얼마 전에는 큰 홍수로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폭설과 살인적인 추위로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구는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대지진이 발생하고 북극의 얼음이 속수무책으로 녹고 있으며, 알 수 없는 질병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인간이 편리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기상이변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집트의 나일강을 막아 세운 아스완 하이댐. 댐이 건설되자 이집트는 고질적인 범람과 전력부족을 해결했고 동시에 농토까지 확보했다. 누가 봐도 댐의 건설은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댐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댐으로 인한 인공호수로 인해 인류의 문화유산들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고 원주민들도 쫓겨나고 말았다. 게다가 수질오염으로 인한 원인모를 병들이 창궐하고 말았다.
중국도 양자강을 막은 산샤댐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아무리 댐이 필요해도 큰 강의 흐름을 막으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게 된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천재지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잠깐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생명 연장 장치를 설치하는 등의 일은 좋지 않다. 얼마 전 87세의 나이로 눈을 감으신 분이 있다. 평소 술도 많이 드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셨는데 잔병은 있었지만 큰 병은 없으셨다. 몇 년 전 그 분의 자손이 아버지를 위해 내게 '예수제'를 지내달라고 하셨다. "산 사람도 구명시식이 필요합니다. 저는 즐겁게 살다 죽고 싶습니다." 그 분은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식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농담을 하셨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으셔서 놀랐습니다. 간밤에 먼 길을 떠나셨던 겁니다."
자연처럼 사람의 인생에도 순리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가게 돼 있다. 그 길을 억지로 막으면 잠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만큼 당사자는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자연과 사람 모두 순리를 거스르면 그만큼의 업을 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