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살의 로커 전인권에게, 이 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전인권의 음악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굴곡졌다. 성공에 취해있다가도,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나태함에 빠져 보컬리스트로서 '사망 선고'를 받았을 때, 가족의 사랑으로 다시 일어섰다. 사랑하는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음악의 힘으로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전인권은 1979년 포크 그룹 따로 또 같이의 보컬리스트로 데뷔했다. 1985년에는 최성욱·故 허성욱·조덕환·故 주찬권 등과 들국화를 결성하고 1집을 발표했다. '행진''그것만이 내 세상''매일 그대와' 등이 공전의 히트를 쳤고, 이 앨범은 아직까지 대한민국 최고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무절제한 생활이 발목을 잡았고, 곧 어둠이 드러웠다. 1987년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총 5번 감옥에 갔다. 술과 도박에도 빠졌고, 부인은 2010년 전인권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아내와 두 자녀는 절망의 끝에선 전인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퇴원해 집으로 찾아온 전인권을 다시 받아줬다. 가정의 품으로 돌아온 전인권은 건강과 정신을 회복하고 들국화 재결성을 제안했다.
그리고 2012년 최성욱과 故 주찬권이 전인권의 뜻을 따랐다. 떠들썩하게 재결성 기자회견도 했고, 1년여간 콘서트 활동도 성공적으로 펼쳤다. 2013년에는 새 앨범 준비에 몰두했다. 하지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작업 막바지에 드러머 주찬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2월 앨범이 나왔지만, 남은 멤버들간 활동은 없었다. 그렇게 또 다시 전인권의 의지가 꺾이는 듯 했다.
전인권의 소속사 측에 인터뷰를 문의했다. 제 47회 골든디스크에서 집행위원특별상을 받은 뒤 근황이 궁금했다. 전인권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고, 홍대 인근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3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 롯데카드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단독 콘서트의 연습 중이었다.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뮤지션 정원영과 함춘호가 후배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편곡 작업 중이었다. 전인권은 의자에 걸터앉아 후배들이 들려주는 음악에 취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공연에서 선보일 엘튼 존의 ‘위 올 폴 인 러브 썸타임’(We all fall in love sometime)을 불렀다. 첫 소절부터 후배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다시 전인권의 음악인생이 계속되고 있었다.
-예전의 전인권과 지금의 전인권이 달라진 점은.
"그야말로 음악에만 빠져있다는 거다. 도박·대마초 다 끊고 음악에만 빠져있다. 외국 친구들의 음악 수준까지 도달하고 싶다. 그들은 좋은 화성과 리듬과 작가의 심경이 표현된 곡을 부른다. 우리도 나름 보여주고 있지만, 더 잘 하고 싶다."
-보컬리스트로서의 꿈은.
"세계에 뒤지지 않는 싱어가 꼭 되고 싶다. 세계 어디 내놔도 노래 정말 잘한다는 이야길 듣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나사는 균일된 기준이 있지 않나. 세계에 가려면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소년 같다.
"최근에 소설가 박민규가 난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19살이라고 했다. 과거 문제가 있을 때는 초등학교 4학년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 이제 한참 지났으니, 5~6살 정도 더 먹은 거다."
-록은 언제까지 비주류일까.
"록 음악은 강렬하다, 열정적이다. 근데 국내에 그런 느낌을 제대로 표현한 그룹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밴드들은 아직도 서양 음악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냥 그들의 음악에 물들어 있고, 또 수준이 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구조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백화점에 가면, 댄스는 있는데 록은 없다. 싸움이 되지 않는다. 록은 강렬한 이미지로 가야하는데 괴상한 걸로 인식하는 거 같다."
-최근에는 어떤 음악을 듣나.
"록과 클래식을 듣는다. 클래식 장황하고 거창하다. 어떻게 이럴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대하다. 백건우의 피아노는 굉장하다. 그 분 음악이 그렇게 멋있는지 과거엔 몰랐다."
-처음으로 록음악에 빠진 건 언제인가.
"17살 때였다. 내가 굉장히 가난했다. 집이 산꼭대기에 있었고, 전축은 물론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라디오만 듣고 음악에 빠지게 되더라. 그 땐 록의 시대였다. 라디오만 틀면 비틀즈와 핑크플로이드의 노래가 들렸다."
-아이돌 음악은 좀 듣는 편인가.
"소녀시대·원더걸스 음악을 쭉 들어봤다. 실력들이 있더라. 특히 원더걸스 '비 마이 베이비'는 좋게 들었다. 예은이가 노래를 잘 하더라."
-대중 음악의 장르가 폭넓게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느끼지 못했다. 계속 댄스고 섹시고 그렇다.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해져야 할 거 같다."
-현 가요계에 일침을 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책도 여러 종류가 있다. 수필도 있고, 시도 있고 소설도 있고. 아이돌에게 묻고 싶은건, '책으로 보자면 너희들은 무슨 책이냐'는 거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옳고 그른 것은 있다.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정체성을 가지고 음악을 했으면 한다. 노래가 히트하는 기쁨, 밴드가 잘 되는 기쁨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벗어야 히트를 하는건 서로 민망하다."
-검정색 선글라스는 트레이드 마크다.
"15년 전부터 세상을 보는데 뭔가 불편했다. 선글라스를 끼니, 제법 어울리더라. 딸에게 '이 옷 잘 어울리냐'고 물어보면, '옷은 됐고, 선글라스만 끼면 된다'고 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