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사랑해, 아빠” 패럴림픽 스키 4위하고 눈물 흘린 양재림
"아빠, 사랑해."
16일 러시아 소치 로사 후토르. 2014 소치 패럴림픽 알파인 스키 여자 대회전 시각장애 부문 2차 시기를 마친 양재림(25)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양재림은 10명이 출전한 1차 시기에서 1분36초82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3위 제시카 갤러거(호주)에 불과 0.17초 뒤진 4위에 올랐다. 만약 앞선 선수 중 실격자가 나오거나 2차 시기에서 갤러거보다 좋은 기록을 낸다면 메달도 가능했다. 하지만 하늘은 끝내 양재림의 편이 아니었다. 합계 3분5초90을 기록한 양재림은 3분2초11을 기록한 갤러거에 3.79초 뒤진 4위에 머물렀다. 대회 마지막 날까지 메달 소식이 없었던 한국 선수단도 아쉬움을 삼켰다.
양재림은 지난 12일 주종목인 회전에서도 중간지점까지 1위와 격차가 불과 0.87초에 불과했으나 결승선을 눈 앞에 두고 중심을 잃고 넘어져 완주에 실패했다. 갑작스럽게 일정이 이틀 당겨졌고, 눈이 내리는 날씨도 그를 괴롭혔다. 울먹일 듯한 목소리로 돌아선 그는 결국 선수촌으로 돌아가서 눈물을 보였다.
양재림은 시각장애 3급이다. 7개월만에 태어난 산소 과다 투입으로 인한 미숙아 망막증으로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 수술을 10차례 이상 받아 오른쪽 눈은 조금이나마 볼 수 있지만 왼쪽 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경기 등급인 'B2'는 일반인이 60m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2m 앞까지 다가가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시각장애 부문은 선수 출신 가이드가 함께 달리며 무선 장비로 코스를 설명해줘야한다. 양재림은 지난해부터 이지열(28)씨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위해 믹스트존에 들어선 양재림의 눈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함께 달린 가이드 이지열(28)이 "울지마"라고 다독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다치지만 말고 완주하라고 하셨지만 아쉽다"며 "아버지가 여기까지 오셔서 그런지 경기가 끝나니 제일 먼저 생각났다. 집에 있는 식구들도 생각난다"고 했다. 양재림은 "시원하기도 하지만 많이 아쉽다. 두 경기 모두 아깝게 놓쳐서…"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오전 1차 시기가 끝난 뒤 메달 생각을 했다. 욕심 부리면 더 못할까봐 안 하려고 했는데 '꼭 따고 싶다'는 생각이 나더라"며 "경기 전까지는 소치만 집중했는데 평창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가이드 이지열도 "시원하지만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평창이 있으니까 희망을 가져 보겠다"고 했다.
양재림은 어머니 최미영(53) 씨가 균형감각과 건강을 위해 여러 운동을 권유했고, 6살 때 스키를 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9년 이화여대 동양화과에 장애인특별전형으로 입학한 그는 한동안 놓았던 스키 폴을 잡았다. 장애인스키협회는 경험이 있는 양재림에게 패럴림픽 출전을 대비한 전문 선수로의 길을 권유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반대했다. 스키장에서 반사되는 빛이 눈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재림이 스키를 타는 것을 가장 반대했던 사람도, 가장 열심히 지원한 사람도 아버지 양창근(57)씨였다. 양 씨는 딸이 좋아하는 운동을 위해 비싼 장비를 마련하고 소치까지 와서 딸을 응원했다. 양 씨는 "경기 전 딸이 프로야구 KIA 팬인데 9회말 투아웃이니까 잘 하라고"고 조언했다며 "회전은 완주를 하지 못했지 않나. 완주를 한데 만족하려고 애쓰고 있다. 한국 선수단이 메달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을 해줬으면 좋았겠는데 아쉽지만 많은 분들이 기대해주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한편 눈물을 짓던 양재림의 얼굴에서도 아버지 얘기를 할 때는 미소가 번졌다. "아빠, 멀리까지 응원 와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스키를 탈 것 같은데 눈 꼭 지킬게. 사랑해."
소치=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