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발라드 황태자'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천일동안''다만' 등을 연속 히트시켰다. 하지만 언제나 록이 고팠다. 무대 위에서 뛰어다니고 샤우팅을 외치며 6시간 스탠딩 공연을 펼쳐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록에 집중하는 기간 대중과는 조금씩 거리가 멀어졌다. 앨범의 연속 실패를 맛봤고, 공연도 매진이 어려워졌다. 수 많은 소녀팬들을 끌고 다니던 '발라드 황제' 이승환의 부진이 이어졌다.
그런 이승환이 절치부심 끝에 정규 11집 '폴 투 플라이-전(前)'을 발매한다. '폴 투 플라이-전'은 2010년 발표한 정규 11집 'Dreamizer(드림마이저)' 이후 4년 만의 신보다. 노장의 부활이 될지, 안타까운 실패가 될지 팬들은 물론 가요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
일단 이승환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평소 3번하던 마스터링을 외국 엔지니어와 6번 했고, 수 개월동안 일주일에 10시간씩 작업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들어간 앨범 제작비용만 무려 3억 8000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내용물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록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말랑말랑한 발라드도 담았고, 선 공개곡 '내게만 일어나는 일'에서는 래퍼 MC메타와 작업하기도 했다. 대중가수로서 이승환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승환은 "1997년부터 끊임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며 "이번 앨범은 1·2집처럼 굉장히 대중 친화적이다"라고 자신있게 소개했다. 이승환의 정규 11집에는 총 40여곡이 수록됐다. 전편은 26일, 후편은 하반기에 내놓는다.
-이번 앨범.
"총 2개의 CD를 기획했다. 이번에 공개한 11집이 첫 번째 CD다. 이번 게 잘 되면 두 번째 CD는 후편으로 올해 하반기 쯤 내놓을 예정이다. 록·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요소들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장르적 다양성 보다는 한 곡 한 곡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너무 많은 변화를 주면 대중과 멀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앨범은 1·2집처럼 굉장히 대중 친화적이다."
-공을 굉장히 많이 들였다고.
"이전에 비해 정확히 두 배다. 그동안 마스터링을 3번 정도했다면 이번엔 6번이나했다. 그만큼 촘촘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외국 유명 엔지니어도 이번 곡을 듣고 '사운드가 굉장하다'고 극찬했다. 몇 개월 동안 일주일에 6일을 10시간씩 작업했다. 비용도 굉장히 많이 들었다. 총 3억 8000만원 정도 쏟았다. 정말 잘 돼야 된다.(웃음)"
-음악에 많은 돈을 쏟는 이유가 뭔가.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좋다.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내 마음은 한결같다. 정규 9집 '환타스틱(Hwantastic)'부터는 내가 제작비로 들인 돈을 음원수익으로 거둬들이기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그동안 음반 성적이 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에 잘 안 되면 한동안 음반을 안 낼 것 같다. 물론 1~2년이 지나면 스물스물 창작욕이 올라오면서 또 다시 준비하겠지만. 사실 나는 정규 5집 '싸이클(Cycle)'을 발매한 1997년부터 끊임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미니앨범이나 싱글을 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디지털 싱글을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이 들더라."
-이소은·이보영과의 작업은 어떻게 이뤄진 건가.
"소은이의 1·2집 제작을 내가 했다. 소은이가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데, 다행히 한국에 나올 일이 있어서 제안과 동시에 녹음할 수 있었다. 6년이란 세월 동안 노래를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하더라. 이보영 씨와의 작업은 '예쁜 목소리가 필요한데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녹음은 15분만에 마쳤다. 목소리가 워낙 예뻐 녹음이 금방 끝났다."
-1·2집의 '어린왕자' 이승환을 그리워하는 대중도 많다.
"사실 난 감성적인 것 보다 B급 코드를 좋아한다. 솔직히 1·2집은 실력에 비해 과대 포장된 느낌이 강하다. 당시엔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가사도 정말 유치하고.(웃음) 다시 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다. 1집의 경우 10곡 중 7곡이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오르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교만해졌던 순간도 있었고."
-동안 유지비결은.
"2주 전에 점과 검버섯을 뺐다. 하하. 철저한 관리 덕분이다. 사실 외적인 관리 보다 중요한 게 마음가짐인 것 같다. 나는 '못된' 어른들의 권위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종종 클럽도 다니고.(웃음)"
-쉴 땐 뭐하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정말 열심히 봤다. 내 노래도 종종 나와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보면서 그래, 90년대 가요계는 서태지와 이승환이지 그랬다. 하하. 공연 때마다 '응사 제작진,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컨츄리꼬꼬와 무대 도용을 두고 법적 다툼도 벌였다.
"당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밀려났지만 지금 한 가지 변한 점이 있다. 이젠 공연장에서 무대 브리핑 제도가 강화됐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사건을 먼저 겪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법적 공방까지 갔지만. 음악·사회·정치 모두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 과거 나의 공연에서 이런 식의 과감한 발언을 문제 삼아 환불 요청을 하는 관객이 있었다. 나는 그 관객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했다. 기꺼이 환불조치 해줬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이 늘 화제다.
"내가 여자보는 눈, 배우 보는 눈이 있다. 가장 큰 후회는 (박)신혜를 놓아준 거다. 신혜가 내 소속사에서 데뷔 준비를 할 때 '연예인스러움에 휩쓸리지 말라'는 잔소리를 늘 했다. 고맙게도 신혜가 그 말을 꼭 지키는 것 같더라. 한류스타로 떠올랐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걸 보면 기특하다. 예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뮤지션으로서의 목표.
"70세가 되서도 무대에 서는 거다. 사실 앞으로는 발라더가 아닌 모던록 뮤지션으로 자리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