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투를 이어가던 투수가 특정팀을 만나 갑자기 맥을 못 출 때가 있다. 상대타자들이 마치 프리배팅을 하듯 맹타를 휘두르곤 한다. 그때 하는 말이 있다. ‘아마도 쿠세를 빼앗긴 모양이다’라고. 순간적이지만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마운드에 선 투수의 구질을 알고 스윙하면 그만큼 안타의 확률은 높다.
특정팀에 약한 모습을 보일 때
최근 마무리투수들이 잇달아 블론세이브를 기록할 때에도 A팀 마무리투수에게 그런 말들이 떠돌았다. 그는 수준급 투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유독 8개 구단 중 2개팀을 상대로는 평균자책점이 10점 안팎으로 높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 데뷔한 외국인투수나 신예투수가 시즌 초반 위력적인 투구를 하다 중반 이후 난타 당하는 것도 상대팀에게 ‘쿠세’를 읽힌 경우가 많다. ‘2년 차 징크스’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투수의 버릇을 안다고 모든 타자들이 안타나 홈런을 뽑아내는 것은 아니다. 올 시즌 팀 타율 3할을 이끌어낸 장원진 두산 타격코치는 “투수의 버릇을 파악했다고 해도 100% 확실하다고 여기기 전에는 타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 타자는 알려주면 ‘쿠세’를 의식하다 더 못 친다. 타자들의 습성에 따라 조언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버릇을 역이용
쿠세를 수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선동열 KIA감독은 “투수가 자신의 쿠세를 안다면 타자와 승부할 때 몇 번만 역이용하면 된다. 그럴 경우 타자는 다음 번 대결에서 헷갈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은 “순간적으로 버릇을 바꿔서 볼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 쿠세를 고쳤다 싶다가도 위기에 빠지면 원래 습성이 나오곤 한다. 평소 팔꿈치 높이, 글러브 위치, 들어올리는 발 높이, 슬라이드 스텝 넓이 등 일정한 투구폼에서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또한 없는 쿠세를 만들어 투수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잘 던지던 투수가 일시적으로 제구가 잘 안돼 얻어 맞았을 때 상태팀에서 ‘OOO 왜 얻어 터졌는줄 알아. 걔 쿠세를 파악했거든’라며 일부러 유언비어를 흘린다.
그러면 그 투수는 자신의 구위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없는 쿠세를 파악하려 애쓰고, 거기에 신경 쓰느라 스스로 밸런스를 망가뜨린다.
주루플레이에도 활용
쿠세는 투수들이 투구할 때의 버릇이라는 일본야구 용어로 야구계에서 흔히 쓴다.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혹은 특정구질을 구사할 때 자신도 모르게 투구동작에서 미세한 차이를 드러낸다. 변화구를 구사할 때는 직구보다 글러브 위치가 높다거나, 직구를 구사할 때는 글러브가 변화구 때보다 좀 더 접힌다든가 하는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변화구 실밥을 보다 확실하게 잡으려 할 때 글러브를 높이는, 글러브가 접히는 것은 직구를 던지려 할 때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에 힘이 더 들어가 는 탓이다.
상대팀 전력분석, 혹은 코칭스태프와 선수가 이를 귀신같이 잡아내 타격할 때 활용하는 것이다. 삼성 김평호, 넥센 심재학, LG 김민호 등 눈썰미가 뛰어난 코칭스태프는 1루 주루코치를 맡아 투수의 습성을 숙지했다가 주자들의 주루플레이에도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