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1군 무대. 그라운드를 밟는 땅의 높의와 위치가 달라졌다. 등번호도 팀 타선을 대표하는 10번으로 바뀌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롯데 하준호(24)의 이야기다. 당당함이 돋보이는 그는 "데뷔 첫 안타를 때려내는 순간 '이제 시작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하준호는 지난 27일 잠실 LG전에 앞서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곧바로 9번타자·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3-3 동점이던 7회 1사 후 상대 선발 리오단을 상대로 우전 안타를 뽑아냈다. 프로 3타석만에 뽑아낸 그의 데뷔 첫 안타다.
김시진(56) 롯데 감독은 다음날인 28일 그를 톱타자로 내보냈다. 최근 체력 부담을 갖고 있던 정훈을 배려함과 동시에 하준호의 다양한 성장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서다. 김 감독은 경기 전 "저 선수 어떻습니까"라고 취재진에 먼저 질문을 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하준호는 1회 볼넷으로 출루한 뒤 박종윤의 희생 플라이 때 선취득점을 올렸다. 2-0으로 앞선 3회 무사 2루에선 1타점 적시타를 뽑아냈다. 데뷔 첫 타점. 5회 투수 직선타, 7회 볼넷으로 걸어나간 그는 2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하준호는 지난 2008년 2차 1라운드(전체 2순위)로 롯데에 입단했다. 아마시절 타자와 투수를 병행한 그는 지명 당시 투수로 뽑혔다. 그런데 마운드에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다. 그는 2009년과 2010년 각각 20경기, 5경기에 나섰는데 총 2패 4홀드 평균자책점 10.57에 그쳤다.
그는 "팔을 풀 때부터 부담감이 밀려왔다. 공 한개마다 '스트라이크 못 던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속에 마운드에 섰다"고 털어놨다. 끝내 '투수로는 성공하기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결국 공익 근무 요원으로 입대했다. 그는 군 제대 후인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인 타자 전향을 시도했다. 비록 스프링캠프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2군에서 훈련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등번호는 10번이다. 이대호(소프트뱅크)가 일본 무대 진출 전까지 달았던 번호다. 그는 "김민호 2군 타격코치님이 '그 번호 달고 못하면 어떡하냐'고 가끔씩 놀릴 때도 있었다"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달게 된 셈인데, 이대호 선배님의 기를 받고 싶었다"고 웃었다.
하준호의 목표는 소박하면서도 야심차다. "요즘 정말 재미있다"는 그는 "20-20이 목표다"고 했다. '20-20'은 20경기에서 20안타를 때려내는 것이다. 그는 "올 시즌 계속 1군에 남아있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라며 "경기도 얼마 안 남았다"며 1차 목표를 밝혔다. 마운드에서는 스트라이크 한개에 부담을 가졌지만 타석에선 "이번에 못 치면 다음, 혹은 내일 안타를 두 배로 치면 된다"고 말하는 하준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