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이 29년 만에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우리 리틀야구의 환경은 아직 열악하다. 전국에 리틀야구장은 7개뿐이다. 그러나 12세 이하 서울시 대표로 꾸려진 이번 대표팀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예선에서 6전 전승을 거두고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랐고, 본선에서도 4전 전승으로 국제그룹 우승을 차지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미국그룹 1위인 시카고 대표팀마저 꺾고 기적같은 쾌거를 완성했다.
우리 대표팀의 선전은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의미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또래들과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경쟁력을 보여줬다. 어린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 뛰기보다는 계속 해왔던 대로 경기를 즐기면서 자신감 속에 우승을 일궈냈다.
대표팀의 우승 비결은 기술이나 세밀함보다는 체격 조건에서 찾고 싶다. 어린 나이에는 봄과 여름, 여름과 가을에도 기량 차이가 크게 난다.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성장 속도가 빠르다. 그럼에도 미국, 일본 등과 경쟁하며 힘대힘의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 선수들의 체격조건이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는 뜻이다. 또 프로 출신 선수들이 아마야구 지도자로 많이 흡수됐고, 어린 선수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메이저리그나 한국 프로야구 영상을 찾아보며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대표팀의 우승을 지켜보면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본다. 바로 야구와 공부, 두 마리 토끼 잡기를 병행하는 것이다. 필자가 20여 년 전 대학 선발팀으로 많은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 미국 및 유럽 대표 선수 중에는 의대나 법대에 다니는 선수들이 더러 있었다. 기업에서 인턴십을 수행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즐기며 공부도 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학교 수업을 이수하며 야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아마추어 야구의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의 일선 학교에선 수업보다 운동에 매진한다. 필자 역시 중·고교시절 마찬가지였다. 매년 3월 전국대회가 치러진 탓에 대회 참가와 합숙 훈련 등으로 3월 말이나 4월 초에 처음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책상도 없었다. 요즘에야 고교야구 주말리그제 도입으로 전보다 덜 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야구부 선수는 운동 중심으로 생활한다.
문제는 고등학교와 대학 졸업 이후다. 매년 신인 드래프트 참가자 중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이는 10%정도에 그친다. 그렇다면 나머지 90%는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 뾰족한 답이 없다. 훈련을 많이 한다고 해서 실력이 꼭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 수업을 통해 인성을 기르고 사회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리틀야구는 학교 운동부가 아닌 클럽 중심의 야구다.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는 구조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는 클럽 야구팀이 거의 없어 선수들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현재 리틀야구는 나이 제한이 만 14세여서 일부 선수들은 1년 유급을 하며 클럽 야구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반 중학교 야구부에 진학하면 1학년 때는 대부분 공을 줍는 등 후보 생활을 해야 하고, 기량이 뒤처지는 선수는 1년 간 진학을 미루며 운동에만 매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든 꿈나무들이 메이저리그를 가고 프로에 입단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멀리 생각하면 야구를 경험한 선수들이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진출한다면 야구 강국, 더 나아가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과 땀방울을 흘렸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돔 구장의 필요성과 프로 선수들이 왜 고액 연봉을 받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은 이같은 지식과 이해도가 부족하지 않은가. 프로야구가 더욱 발전하려면 시스템과 구조가 더 잘 갖춰져야 한다. 세계 정상에 올라선 우리 꿈나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잡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