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슬로건에 걸맞은 활약을 선보였다. 선수들 모두 한마음으로 우승을 위해 싸웠고, 염경엽 넥센 감독은 한국시리즈(KS) 첫 지휘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완성도 높은 전략을 선보였다. 모두가 넥센을 두고 쉽게 지지 않는 팀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거듭된 상승세 속에 우승에 대한 확신도 높아만 갔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마운드가 계산대로 운영되지 않았고, 믿었던 타선이 KS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했다. 결국 그들의 도전은 11월11일 KS 6차전에서 삼성에 1-11로 패하며 '실패'로 돌아갔다. 삼성이 통합 4연패의 축배를 들어올린 그날이 넥센 선수들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 돼 버렸다.
넥센은 왜 삼성에 질 수밖에 없었을까. 정수근 베이스볼긱 위원은 "경험 부족이 미세한 차이를 가져왔고, 그것이 단기전에서는 결정적인 실수가 됐다"고 평했다.
그럼에도 넥센의 도전은 아름다웠다. 한때 히어로즈는 돈을 받고 선수를 파는 구단으로 여겨지며,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다. 야구판에서는 그들을 두고 '이단아'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런 이들이 영화같은 스토리로 '공포의 외인구단'이 됐다. 이제 그 누구도 넥센을 두고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되려 그들에게 엄지를 치켜 세운다. 정수근 위원은 "넥센의 변화를 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 넥센은 삼성에 왜 질 수밖에 없었을까.
"가장 기억이 나는 두 경기가 있다. KS 3· 5차전에서 모두 한 점 차로 이기고 있다가 막판에 경기가 뒤집어지면서 졌다. 넥센은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 3차전에서는 8회 이승엽의 평범한 뜬공 때 2루수 서건창이 중견수 지점까지 넘어가면서 야수들끼리 서로 뒤엉켜 타구 처리가 제대로 안됐고, 동점을 허용했다. 5차전 9회 최형우의 2타점 끝내기 안타 때는 앞서 강정호의 실책보다 박병호의 수비가 안타까웠다. 주자가 1·3루에 있었기 때문에 야구장의 크기를 고려해 베이스쪽 라인에 더 붙어야 했다. 그러나 그 점을 박병호가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끝내기 안타가 됐다. 되짚어 보면 아쉽지 않은 경기가 어디 있겠냐고 하겠지만, 이 두 경기를 잡았다면 넥센이 우승했을 것이라고 본다. 삼성이 6차전을 쉽게 이겼던 것도 5차전에서 상대 실책으로 흐름을 완전히 가져왔기 때문이다. 결국 넥센은 경험 부족으로 인한 실수가 단기전에서는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순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 믿었던 서건창과 박병호, 강정호 등이 필요한 순간에 제 몫을 다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나도 큰 경기를 해봐서 알지만, 선수들은 긴장을 안한다고 해도 막상 타석에 들어서면 확실히 정규시즌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세 타자 모두 시리즈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을 것이고, 자신들이 뭐라도 해야겠다는 부담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투수 운영은 염경엽 감독이 최상의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본다. 물론 계산처럼 막아주지 못하면서 문제가 됐다."
- 넥센은 이번 준우승으로 얻은 게 뭘까.
"값진 경험이다. 나도 우승도 해보고 2000년에는 현대와 7차전까지 갔다가 패해서 준우승을 했는데, 그때 느껴지는 분함과 허탈감, 허무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후에 큰 경기에 나설 때마다 그때의 감정을 간혹 떠올렸다. '또다시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했다. 우승을 한 삼성은 잘 모르겠지만, 진 팀 입장에서는 얻어지는 독기 같은 것이다. 박병호나 강정호, 서건창을 비롯한 넥센 선수들은 이 일을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또 넥센은 이번 시리즈를 통해 강팀의 반열에 오른 것 같다. 넥센은 전 구단을 통틀어 삼성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팀이었다. 자부심을 가지길 바란다. 넥센 선수들은 어제는 미칠 노릇이었다면 오늘은 공허함이 밀려올 것이다. KS까지 올라간 보람도 없는 것 같고, 내가 뭐했지 싶을 것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근데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올해 많은 야구팬들이 넥센 덕분에 야구를 재미있게 봤다. 많은 야구팬들이 넥센을 연호했고, 넥센이라는 팀이 얼마나 멋진지를 알았다. 넥센은 그것만으로도 우승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본다."
- 염경엽 감독이 준우승 확정 직후 흘린 눈물이 화제가 됐다.
"나는 우승을 하고, 준우승을 해도 안 울어봤다. 남자가 눈물을 흘릴 때에는 그만큼 감정의 동요가 컸다는 의미다. 모든 것을 쏟았기 때문에 울 수도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염 감독이 한 시즌을 잘 이끌어왔다. 그는 시즌 시작부터 한국시리즈 우승 도전이라는 목표를 두고 왔고, 결국 눈 앞의 영광을 두고 졌다. 우승을 해도 그 순간 기쁜데 하루도 안간다. 다음날 눈 뜨면 허무함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준우승 팀은 게임이 끝나는 순간 온다. 그 허무함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눈물이다."
- 넥센이라는 팀의 변화도 참 극적이다.
"나는 선수시절 히어로즈가 프로구단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돈이 없어서 선수들 연봉을 내려치고, 구단을 운영하기 위해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했다. 프로구단으로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 모습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동생 (정)수성이가 히어로즈 소속이었기 때문에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팀이 넥센이라는 스폰서와 이장석 대표의 경영철학이 잘 녹아들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구단 운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선수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줬다. 선수 연봉에서도 다른 구단에 비해 더 줬으면 더 줬지 덜 주지는 않는 구단이 됐다. 그러면서 선수들의 팀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졌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된 느낌이다. 히어로즈의 변천사를 생각해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 넥센은 올해 잘 했기 때문에 내년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넥센이 왜 강한 팀이 됐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주위에서 강정호의 해외진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그 자리는 또 다른 선수가 채울 것이라고 본다. 염경엽 감독이라면 일찍이 강정호의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카드가 있을 것이다. 넥센은 이제 선수 한 명 나갔다고 해서 휘청거릴 만한 팀은 아니다. 선발에 대한 부분은 젊은 투수 육성이 가장 큰 답이다. 올해 잘 했기 때문에 주위에서 넥센에 갖는 기대치가 높아졌다. 그 기대감이 부담감이 될 수 있지만, 마음을 다잡는 좋은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넥센이라는 팀이 있었기 때문에 삼성의 우승이 더 빛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시리즈 내내 감동적인 경기를 보여준 두 팀 덕분에 많은 야구팬이 확보됐다고 본다. 8개월 동안 쉼없이 달려온 다른 팀에도 한 야구인으로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넥센의 또 다른 도전이 벌서부터 기대된다. 도전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