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의 목소리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위로의 말을 건네자 이내 괜찮다는 듯 이같은 답이 돌아왔다. 여느 선수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삼성 강명구(34)가 선수 유니폼을 벗고 구단 전력분석원으로 새 출발한다.
삼성이 25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출한 2015 보류선수 명단에 강명구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새로운 팀을 찾거나 아니면 은퇴,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 강명구는 고민 끝에 구단의 제의를 수용했다. 삼성은 이미 보류선수 제외 통보 직전에 '전력분석원으로 일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대주자 전문요원' 강명구는 팀에서 소금 같은 존재였다. 2003년 삼성 2차 1라운드 7순위로 입단한 그는 현역 시절 반짝반짝 빛난 적은 없다. 그러나 늘 뒤에서 감초 역할을 담당했다. 류중일(51) 삼성 감독은 그를 '히든 카드'라고 했고, 강명구는 1~2점 차 승부에서 줄곧 투입됐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대주자 전문 요원이 통산 100도루 이상을 기록한 건 그가 처음이다. 강명구는 통산 581경기에서 타율 0.192(297타수 57안타)에 도루는 111개를 올렸다. 도루 성공률은 0.822에 이른다.
강명구는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점차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 시즌은 부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게다가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는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멘붕이었다. 1~2년 더 뛰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나중에는 수긍이 가더라. 내가 이렇게 만든 거구나 싶었다"고 자책했다.
이어 강명구는 "나도 주전으로 도약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1군에는 꾸준히 있었지만 중요할 때 범타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선수라면 계속 경기에 나가는 게 좋다"면서 "후배들이 같은 길을 걷는다면 그 시간에 다른 부분을 더 노력해서 부족한 점을 채웠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그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뛴다. 강명구는 "선수 생활을 오래하는 게 당연히 좋다. 그러나 미련을 접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다른 팀에서 충분히 제의가 올 수 있었는데"라고 묻자 그는 "처음 입단한 팀에서 기회를 주셨다. 그래도 구단에서 손을 내밀어준 게 한편으로 고맙고 좋은 기회다"며 "이쪽(전력 분석) 분야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고 얘기했다.
선수시절 그의 발은 베이스를 훔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이제 상대팀 전력 탐색을 위해 그의 눈매가 더 빨리, 매섭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