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권혁(31·한화)의 음성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레임과 함께 아쉬움이 묻어났다. 13년간 파란 유니폼을 입었던 그이기에 고향 같은 팀을 떠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던 것이다. 권혁은 지난달 30일 일간스포츠와의 통화에서 "앞으로의 야구인생을 위해 삼성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명분을 찾아 떠나게 된 셈"이라고 심경을 전했다.
그는 오는 10일 대구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대전으로 이사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대구 자택을 처분하고 대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둔 상태다. 권혁은 "변화에 대한 걱정보다는 설레임이 앞서고, 의욕적"이라고 웃었다.
권혁이 새로운 도전을 펼칠 곳은 한화다. 그는 한화와 지난달 28일 4년간 총액 32억원(계약금 10억원+연봉 4억5000만원+옵션 4억원)에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다른 구단과의 접촉도 있었지만, 한화에서 나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마음이 느껴졌고, 내가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고 자신의 행보에 대해 설명했다.
권혁은 지난 2002년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발을 디뎠다. 프로 통산 13시즌 동안 512경기 출장해 37승24패 11세이브 113홀드·평균자책점 3.24를 기록하며 명실상부 리그를 대표하는 왼손 불펜 투수 평가받았다. 특히 2007년부터 6년 연속 두자릿수 홀드 달성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출전 등으로 인상깊은 활약도 남겼다. 한화는 권혁의 영입으로 왼손 불펜 자원을 강화하면서 튼튼한 뒷문을 보유하게 됐다.
권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면에서는 여전히 뛰어나지만, 부상 경력과 노쇠화로 인해 예전과 같은 빠른 공을 더이상 던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혁은 이에 대해 "변한 것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다음은 권혁과의 일문일답이다.
- 거취가 결정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겠다. 어떻게 지냈나.
"삼성과 협상이 결렬 되고 거취문제에 대해 열흘 정도 고민을 많이 했다. 결정되고 나니까 이제는 속이 다 후련하다.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고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다."
- 13년간 뛰었던 삼성을 나온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나 같은 경우에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명분과 실리가 있다면 계속 있던 팀, 살던 곳에 있는 것이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길게 내다봐서 7~8년 정도 야구를 할 수 있다. 남은 야구 인생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명분을 찾아 떠난 것이다."
- 한화행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
"접촉한 구단은 몇 군데가 있었는데, 가장 적극적이었다. 노재덕 단장님과는 전화통화를 했고, 운영팀장과 만나 계약을 했다. 한화 관계자와 얘기를 나눌때 '구단에서 나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나를 어느 정도의 가치로 봐주는지 선수들은 대화만으로도 알 수 있다. 또 선수 입장에서는 팀을 옮기기 위해 고민을 한다. 내가 가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등등 그런 점들이 한화와 가장 잘 맞아떨어졌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지만, 20~30억원의 차이가 아닌 이상, 돈에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 김성근 감독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대해 굉장히 뜻 깊게 생각했는데.
"김성근 감독님이 운동을 힘들게 시킨다고 하는데, 삼성도 운동량으로 따지면 뒤지진 않는다.(웃음) 운동 선수가 운동을 힘들게 하는게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한다. 힘든 훈련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김성근 감독님은 야구인으로서 대선배님이다. 그분 밑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 한화는 최근 2년간 최하위에 머물렀다. 마운드 약세가 두드러졌는데, 권혁에 대한 기대치가 크다.
"불펜투수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 나가든지 꾸준히 부상없이 뛰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잘했다, 못했다 성적을 떠나서 꾸준히 자리를 지켜줘야한다. 부상없이 뛰는 것은 자신있다. 그렇게 된다면 등판하는 상황이 많아 질 테고, 팀이 이길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내가 중심이라는 생각보다 화합하고 섞여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 권혁에 대해 부상 경력과 노쇠화로 인한 구속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나는 변한 것이 없다. 좋은 성적을 냈던 2007년부터 2010년까지도 사실 스피드가 많이 나왔던 것은 아니다. 스피드면에서 뒤떨어졌다는 생각은 안한다. 요즘도 던지면 시속 140km대 후반은 나온다. 만약 스피드가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으로 보완가능하다. 그건 내 노력에 달려있다고 본다."
-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을텐데.
"십년을 넘게 상대팀이긴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얼굴보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내가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은데, 융화는 잘된다. 크게 걱정은 안한다."
- 가족들과 다함께 대전으로 이사를 가는 것인가.
"그렇다. 와이프가 늘 나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러면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전적으로 맡겨준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는 나가서 야구를 하면 되지만, 와이프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을 하고 사람들을 다시 사귀고 해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큰딸이 5살이고 둘째가 3살, 그리고 곧 막내가 태어나는데, 열심히 야구를 해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