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장원준(31)과 SK 김광현(28)은 20일 현재 나란히 프로 통산 99승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승리 기록을 얻는 쪽이 KBO리그 왼손 투수로는 역대 세 번째 100승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얄궂게도 둘의 다음 등판 예정일은 같은 날이다. 만약 그 날 둘 다 이긴다면 어느 쪽이 '3호'로 기록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주인공은 김광현이다.
김광현은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18일까지 김광현이 99승, 장원준이 98승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일에 희비가 엇갈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장원준은 수원 kt전에서 6이닝 8피안타(1홈런)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돼 99승 고지를 밟았다.
반면 김광현은 문학 넥센전에서 6이닝 8피안타(1홈런) 2실점을 기록하고도 패전을 안았다. 이제 두 사람은 양 팀 선발 로테이션에 큰 변화가 없는 한 24일 일요일에 함께 100승 사냥에 나선다.
여기에서 KBO의 고민이 시작됐다. 두 투수가 100승을 같은 날 달성했을 때, 과연 누구의 100승을 먼저 인정해야 하느냐라는 문제가 있다. 경기가 공평하게 똑같은 시간에 시작한다면 결정이 쉽다. 승리투수 기록은 경기 종료 뒤 확정된다. 승리투수 요건을 채운 뒤 경기가 먼저 끝난 투수가 우선권이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두 투수가 등판하는 경기 시작 시간이 다르다. 김광현은 문학 NC전에서 오후 2시에 마운드에 오르지만, 장원준이 등판하는 잠실 한화전은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 대상 경기라 오후 5시에 플레이볼 된다.
1997년 송진우(한화)와 2015년 장원삼(삼성)의 뒤를 잇는 좌완 3번째 100승 투수 타이틀을 어느 투수에게 줘야 할지, KBO 관계자들도 머리를 싸맸다.
결국 20일 오후에 결론이 나왔다. KBO 관계자는 "과거 유사한 사례들을 찾아본 결과, 이전처럼 결국은 '기록 달성 시간'을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례가 있다.
2012년 4월 15일 LG 정성훈과 이진영은 같은 날 같은 이닝에 통산 700득점을 달성했다. 6회말 정성훈이 솔로홈런을 쳐서 먼저 홈을 밟았고, 이진영은 이후 중전안타로 출루했다 서동욱의 적시타로 득점했다. KBO 공식 레코드북에는 정성훈이 29번째, 이진영이 30번째로 기록됐다.
통산 500득점 역시 비슷한 케이스였다. 지난해 8월 11일 롯데 강민호와 넥센 박병호가 같은 날 다른 구장에서 500득점 고지를 밟았다. 경기 시간상 먼저 득점한 강민호가 75호, 박병호가 76호로 확정됐다.
따라서 장원준보다 일찍 등판하는 김광현은 이번에도 한 발 먼저 100승을 따낼 기회를 잡은 셈이다. 이렇게 되면 장원준이 조금은 억울할 수도 있다.
KBO 관계자는 "올림픽 같은 대회도 미리 잡힌 경기 일정에 관계 없이 금메달이 나온 시간에 따라 한국 선수 1호, 2호 금메달을 결정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둘 중 누구에게나 100승은 소중한 기록이다. 걸어온 길이 서로 달라서 더 그럴 수도 있다. 김광현은 SK 입단 직후부터 에이스로 키워졌고, 첫 승리도 입단 첫 해인 2007년 5월 13일 무등 KIA전에서 선발승으로 따냈다. 반면 장원준은 데뷔 첫 해인 4월 8일 사직 두산전에서 선발이 아닌 구원승으로 첫 승리를 신고했다.
김광현은 데뷔 2년 만인 2008년에 16승을 올리면서 다승왕에 등극했고, 2010년에는 개인 최다인 17승으로 날아 올랐다. 대신 2011년 4승, 2012년 8승으로 기복을 겪었다. 장원준은 김광현처럼 리그를 호령한 슈퍼 에이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경찰야구단 복무 2년 제외)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는 꾸준한 투수였다. 두 왼손 투수의 100승에는 서로 다른 의미의 가치가 있다.
역대 KBO리그 100승 투수는 1987년 김시진(삼성)부터 지난 6일 윤성환(삼성)까지 총 25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