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레킷벤키저(옥시)부터 아우디폭스바겐, 이케아, 쓰리엠(3M)까지. 한국 내 외국계 기업의 무책임한 영업 행태에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소비자 피해를 유발시킨 제품을 판매한 것도 모자라 차일피일 보상을 미루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련 법과 제도가 느슨한 탓에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3M '유해 필터' 한국만 판매…'제2의 옥시' 되나 24일 환경부에 따르면 미국에 본사를 둔 3M은 수년간 우리나라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 유해물질이 검출된 필터를 공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3M이 제조한 독성물질인 OIT(옥틸이소티아졸론)이 함유된 필터를 사용한 공기청정기 모델은 위니아 2개, 쿠쿠 9개, LG 17개, 삼성 6개, 청호나이스 1개, 프렉코 2개 등이다.가정용 에어컨은 삼성, LG 2개사의 33개 제품으로, 대부분 2007년에서 2015년 사이 단종됐다.
이에 한국3M은 문제가 된 제품의 자발적 회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미국 환경보호청·미국 표준협회 등 국제적인 기관에서 인증 받은 3M 본사 연구소에서 실험한 결과 공기 중으로 퍼져나 온 필터의 항균물질은 극미량"이라며 "인체에 유해한 수준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필터 회수와 교체 방법, 보상안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무해하다고만 변명하기 바쁘다. 더구나 해당 필터를 공급받은 국내 공기청정기 제조사의 문의에도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OIT 향균필터의 판매는 한국에서만 행해진 것으로 드러나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한국3M이 '제2의 옥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3M 필터의 경우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만큼 해당 필터를 사용한 고객이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며 "하지만 한국3M은 여느 외국계 기업들과 같이 사과는커녕 책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옥시와 같이 소비자 불매운동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의 잇따른 '횡포'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도 '살인 가습기 살균제'를 한국에서만 팔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1528명에 달하고 이중 239명이 숨졌다. 옥시는 처음부터 제품의 위험성을 알았으나 제대로 안정성 검사를 하지 않았다. 또 유해성이 드러난 후에도 피해자 보상은커녕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회사명을 변경하는 등 사건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했다. 독일 기업인 아우디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사태도 마찬가지다. 아우디폭스바겐은 연비조작과 관련 162억 유로(약 21조3900억원)의 비용을 책정하고 미국에서는 100억 달러(약 1조1700억원)를 우선 배상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유럽에서도 서둘러 대규모 리콜을 시행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보상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환경부가 요청한 리콜 계획서를 계속해서 부실하게 제출하는 등 책임 회피에만 몰두하고 있다. 스웨덴의 가구 기업 이케아의 '횡포'도 심각하다. 이케아는 지난달 미국 어린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말름 서랍장'을 국내에서는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이케아는 미국에서 2900만개, 캐나다에서 660만개의 서랍장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했고, 판매 자체를 중단했다. 하지만 10만개의 서랍장이 팔린 한국에서는 뒤늦게 원하는 고객에 한해 환불해 주기로 했을 뿐 계속 팔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더욱이 환불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소비자에게 제대로 통보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 이상 '호갱' NO…징벌적 손배 도입 여론 거세
외국계 기업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소비자를 무시하는 듯한 영업행태를 일삼는 데는 국내 법과 제도가 느슨한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역대 정부는 해외 투자 유치와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명목 하에 국내 소비자 권리 보호를 등한시해 왔다"며 "국내 규제가 느슨한 데다 이를 어겨도 처벌이 가볍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가 매번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영국·미국 등 해외 선진국들은 악의적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실시, 소비자를 적극 보호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란 기업이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저질러 심각한 손해를 일으킨 경우 발생한 피해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4년 미국에서 벌어진 '맥도날드 커피 소송'이 있다. 뜨거운 맥도날드 커피에 화상을 입은 할머니가 16만 달러(약 1억8000만원)의 치료비 외에 286만 달러(약 32억5400만원)의 징벌적 배상을 맥도날드로부터 받아냈다. 또 미국 법원은 존슨앤드존슨의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하다 암에 걸린 피해자에게 약 630억원을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피해자에게 피해사실 및 인과관계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또 법원에 가도 화해나 패소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간신히 손해를 입증해도 통상손해배상과 소액의 위자료 등 보상금이 미미하다.
그래서 '한국형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은 법적 장치가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의 91.7%(1417명)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제2의 옥시사태를 막기 위해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에 피해를 입힌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최대 순자산의 10%까지 부과하는 내용의 징벌적 손해배상 특별법을 지난 19일 대표 발의했다.
참여연대는 “징벌적 손해배상 특별법은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하다. 고의나 중대과실로 국민의 신체와 안전에 위해를 끼친 기업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