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이후 최대 위기가 닥쳤다. 넥센 히어로즈가 구단 수뇌부의 연이은 횡령 행위 적발로 휘청거리고 있다.
넥센 구단주인 이장석(50) 서울 히어로즈 대표이사는 16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한정석 영장전담판사 심리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조사 1부는 지난 11일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사기와 횡령 혐의로 이 대표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대표는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 2008년 자금난에 몰리자 재미 사업가인 홍성은 레이니어 그룹 회장에게 20억원을 빌렸다. 이 돈으로 프로야구 가입금 일부를 충당해 히어로즈 구단을 운영해 나갔다. 이후 홍 회장은 이 대표에게 돈을 빌려 줄 때 약속했던 지분 40%를 양도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이 대표는 20억원이 단순 대여금에 불과했다고 맞섰다.
주식을 달라는 홍 회장과 이자를 포함해 28억원을 갚겠다는 이 대표의 대립은 결국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다. 민사 소송에서 대한상사중재원과 법원이 연이어 홍 회장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러나 이 대표는 주식 양도를 미뤘다.
결국 홍 회장은 이 대표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횡령과 배임 혐의도 고소장에 포함시켰다. 검찰은 사기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대표가 약 50억원에 이르는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포착했다. 구단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 수색했고, 지난 8일 이 대표를 소환 조사했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투자금이 맞다"며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이 대표의 오른팔인 남궁종환(47) 서울 히어로즈 단장도 30억원에 가까운 공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조사 1부는 남궁 단장이 2010년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회삿돈 28억원을 빼돌린 정황을 잡아냈다. 곧 불구속 기소될 전망이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히어로즈는 한국 프로야구에 구단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자립형 야구 기업이다. 창단 초기에는 자금난에 시달려 주축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보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프로야구단들 틈에서 점점 확고한 위치를 점했다. 이 대표의 주도 아래, 다른 구단들에서 보기 힘든 과감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여럿 성공시켰다. 성적도 좋았다. 2013년부터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올 시즌에도 3위에 올라 있다. 4위와 격차가 커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공든 탑이 한순간에 흔들리고 있다. 히어로즈는 이 대표에게 의존도가 큰 구단이다. 신인 지명부터 트레이드, 연봉 협상까지 이 대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구석이 없다. 남궁 단장과 함께 구단 살림뿐 아니라 선수단 운영에도 많은 부분을 관여해 왔다. 이 대표를 둘러싼 상황이 당장 경기력에 큰 지장을 주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히어로즈 구단의 정체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다.
염경엽 넥센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과 구단 관계자들은 모두 이 일을 함구하고 있다. 일단 대표이사의 거취와 관계없이 눈앞의 할 일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다. 이 대표는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면서 "야구팬들에게 꼭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일단 구속 수사는 면했다. 17시간에 가까운 강도 높은 조사 끝에 17일 새벽 이 대표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가 기각됐다. 심리를 담당한 한 판사는 "사기 혐의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