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 '원조 에이스'였던 이청용(28·크리스털 팰리스)이 '부활 전주곡'을 울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간 팀 안팎에서 반복된 시련 속에서 기량 못지 않게 내적 성장을 이뤄냈다. 9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중국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은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심을 치켜 세워줄 첫 경기다.
◇이청용, 인생 최악의 암흑기
울리 슈틸리케(62) 대표팀 감독은 지난 22일 9월에 열리는 중국 및 시리아와 최종예선 2경기에 나설 21명의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이청용은 지난 3월 이후 6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다는데 성공했다. 기성용(27·스완지 시티)과 함께 '쌍용'이라 불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였던 그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빛 한줄기 없었던 암흑기의 끝이 보이고 있다. 이청용은 지난해 2월 챔피언십(2부리그) 볼턴 원더러스에서 크리스털 팰리스로 이적했다. 이미 팀을 옮기기 직전 열린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오른쪽 정강이뼈를 다친 탓에 팀내 주전 경쟁에서 밀린 상태였다. 몸값도 뚝 떨어졌다. 크리스털 팰리스로 이적할 당시 그의 몸값은 100만파운드(16억원)에 그쳤다. 2012년 한 때 1000만파운드(약 180억원)까지 치솟았던 때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새 팀과 관계는 갈수록 곪아갔다. 이청용은 지난 시즌 13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교체출전이 9경기나 됐다. 납득할 만한 설명없이 벤치를 지키는 날이 늘어나자 감독과 사이도 벌어졌다.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이청용은 시즌 막바지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앨런 파듀(55) 감독이 경기 중 너무 흥분해 교체카드가 몇 장 남았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다혈질인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시즌 선수로서 겪을 수 있는 굴욕을 충분히 많이 겪었다"며 "일주일 전부터 선발로 예정된 상태로 훈련했는데 갑자기 벤치에 앉아서 후반전도 못 나가고 경기가 끝난 경우도 많았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급기야 '이적하겠다'는 의중까지 밝혔다. 이청용은 "팀과 계약기간은 2018년까지지만 이대로는 팀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다른 팀과 접촉을 시도해봐야 할 것 같다"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구단은 강경 발언을 한 이청용에게 3만 파운드(5060만 원)의 벌금을 물렸다. 파듀 감독은 이청용을 FA컵 4강전에서 제외하는 등 교체 명단에서도 그를 완전히 들어냈다.
설상가상. 당연하게 합류한다고 생각했던 대표팀마저 이청용을 제외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6월 스페인·체코와의 유럽 평가전 명단에서 그를 뺐다.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선수는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는 원칙을 예외없이 적용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소속 팀에서 경기를 꾸준하게 뛴 선수를 발탁한다는 방침은 변하지 않는다. 이청용이 이렇게 경기를 나서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대표팀에 발탁되기 힘들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반드시 떠나겠다'고 이를 갈았던 소속팀 이적도 불발됐다. 이청용은 지난달 30일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지난 시즌엔 많은 시간을 뛰지 못했다. 매일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팀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며 잔류 의사를 내비쳤다. 한 때 파듀 감독을 향해 거침없이 불만을 드러냈던 기세가 완전히 꺾인 발언이었다.
◇아픈만큼 성장, 부활의 서곡
벼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절치부심한 이청용은 확실히 달라졌다. 프리시즌을 충실히 소화하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파듀 감독도 변화한 이청용을 알아보고 기회를 주고 있다.
일단 이청용은 선발이든 교체 출전이든 경기에 꾸준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청용은 지난 13일(한국시간) 2016~201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웨스트 브로미치전 및 20일 2라운드 토트넘전에 선발 출전해 각각 66분과 82분 간 활약했다. 특히 28일 열린 본머스와의 3라운드 경기는 단순한 출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앞선 두 경기에서 연속으로 선발 출전했던 이청용은 이날 후반 21분 교체 투입돼 24분을 소화했다. 이청용이 없는 가운데 크리스털 팰리스는 전반 11분 조슈아 킹(24)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리그 2연패 중인 파듀 감독이 패배를 피하기 위해 가장 먼저 꺼내든 교체 카드는 이청용과 윌프레드 자하(24)였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경기내용이 좋아도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교체됐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득점은 없었으나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투입된 이청용은 중앙뿐만 아니라 좌우 측면으로도 폭넓게 움직이면서 팀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크리스털 팰리스는 이청용 투입 후 공격 물꼬를 텄고 서서히 득점 기회를 만들어나갔다. 결국 경기 막판에 터진 스콧 단(31)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블루 드래곤'이 경기에 나서기 시작하자 슈틸리케 감독의 차가웠던 마음도 녹아내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청용을 재발탁 한 뒤 "이청용은 프리시즌도 모두 소화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로 나서는 등 꾸준히 출전 중이다"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선발로 나서고 있는 선수를 대표팀에 제외할 이유가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청용은 한국 축구의 간판이다. A매치만 72경기를 소화한 베테랑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월드컵 등 두 번의 월드컵 경험이 있다. 기량도 떨어지지 않았다. 꾸준한 경기 출장과 함께 내면까지 성숙한 이청용이다. 중국과 시리아를 잡기 위해서는 그의 힘이 필요하다. 이청용의 복귀로 '쌍용 체제'를 다시 만든 '슈틸리케팀'이 최종예선 2연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