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13'이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 모자를 쓰고 나타난 유해진(46)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낡은 모자였지만 개봉을 앞둔 영화 '럭키'(이계벽 감독)의 제목과 개봉 날짜인 13일이 정확하게 명시돼 있어 시선을 끌었다. "10년 전부터 집에서 굴러 다니던 유물이에요. 근데 딱 맞아 떨어진거지. 요즘 부적처럼 쓰고 다녀요" 인생이 예능, 인생이 럭키한 남자다.
부적의 효염은 대단했다. 유해진이 원톱 주연으로 나선 '럭키'는 개봉하자마자 3일만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 '전우치'에 이어 역대 코미디 영화 최단기간 흥행 기록을 세웠다.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좋겠다"는 유해진의 겸손한 바람은 빠른 시일 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 멜로 연기까지 물이 올랐다.
"많은 분들이 내가 멜로 연기를 하면 부담을 느끼실 것 같다. 나야 당연하고. 멜로를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 코믹함이 들어가도 부담이 된다. 어색하게 표현될까봐."
- 자연스러웠다.
"극의 흐름이 잘 따라가 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 정말 열심히 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지 않으면 서로 어색한 것 아니냐. 그런 걱정도 해야 했다. 재미있게 봐 주셨으면 싶다."
- 정통 멜로에 대한 욕심은 안 생기나.
"나에게 맞는 멜로라면 생각해 볼 것 같다. '절대 안 할거야'라는 생각은 아니다. 물론 진짜 오글거리는 시나리오는 들어오지도 않겠지만.(웃음) 나에게 맞는 상황이고 '그래, 저 정도는 유해진이 해도 괜찮겠다. 저럴 땐 사랑이 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라면 드라마로서 해보고 싶다." - 광고에서 카드와의 멜로가 인상 깊었다.
"찍을 때는 어려웠다. 근데 요즘엔 술 마시면서 나도 가끔 본다. 초반에 음악이 깔리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등장하지 않나. 그 부분은 좀 마음에 든다. '미친 것 같애'라고 말하면서도 슬쩍 보게 되더라.(웃음)"
- '삼시세끼'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다.
"장항준 감독과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인데 최근에 야구하면서 까불거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고 하더라. 카메라 의식 안하고 진짜 내가 까부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나 역시 '평소에 난 이렇게 놀아'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 구성원들이 편해서 자연스럽게 내 모습이 나온다. 예능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 예능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반 다큐 같다고 해야 할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교육 방송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재미는 있어야겠지만 일부러 웃기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촬영을 갈 때도 '오늘 예능 찍으러 가네'라는 마음은 없다. 그래서 더 까불게 된다. 많이 좋아해 주시는 이유도 그건 부분에서 오는 것 아닌가 싶다."
- 벌써 여러 번 여행을 다녀왔다.
"나도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고창편 같은 경우는 진짜 못 할 수도 있었다. 지난 번 여행을 끝내면서 '다음에 고창편 있어요' 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는지 안 가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다음이 기약돼 있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훅 들어온다.
'몇 월 달 쯤 들어갑시다'라는 말만 있었어도 일찌감치 촬영 스케줄과 조율을 했을텐데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삼시세끼' 역시 나에게는 작품과도 같다. 좋은 이미지로 시작했고 간다는데 나만 못 한다고 하기가 미안했다. 모처럼 좋은 사람들이 다시 뭉친다는 기분에 어렵게 참여하게 됐다."
- 예능 속 이미지가 연기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부담은 없나.
"있다. '뭐야, 삼시세끼나 영화나 큰 차이가 없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나에게도 안 좋은 것 아니냐. 그런 부담은 사실 있지만 그래서 연기를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원래 낯을 가리는 스타일 아니었나.
"엄청 가렸다. 인터뷰를 할 때도 '좋았나요?'라고 물으면 '네 좋았어요'라고 답하는게 끝이었다. 거기에 뭘 더 붙이면 내가 느낀 감정이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인터뷰 하시는 분들도 힘들어 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표현하려고 한다."
- 흥행 성적에 대한 기대는 어떤가.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조연을 하든 주연을 하든 어떤 작품을 하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화는 배우 한 명의 작품이 아니다. 투자자가 있고 스태프가 있고 그 외 무수히 많은 관계자 분들이 계신다. 그 수고를 관객수가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보람을 느끼는 정도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수치로 말하긴 그렇지만 제발 손해 안 보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여전히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자신 만의 목표가 있다면.
"크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바람인데 어딜가든 '배우 유해진 입니다'라고 인사를 하게 되지 않냐. 유해진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 '배우'라는 단어를 덜 민망하게 하자는 것이 내 소망이다. '쟤는 아직도 자기보고 배우라고 하네'라는 말만 안 들었으면 좋겠다. 그건 흥행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 때가 되면 알아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