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목소리가 잠겼다. 2주 이상 말을 하지 못하면 이비인후과 진단을 받아야한다고 해서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하게 이상은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모든 일을 멈춰야 해야 했다. 이 중요한 시국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은 왜일까.
하도 답답해서 방법을 궁리하던 차에, 혹 땀으로 몸의 독소를 빼내면 나을까 싶어 맛집을 잘 아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혹시 매운 전어무침 잘 하는 집 아는 데 있습니까?” 지인은 “시장골목에 허름한 집이 있는데 맛이 끝내줍니다”라고 말했다.
지인과 함께 간 서울의 한 재래시장 음식점은 원래 목포에서 하던 집인데 서울로 올라와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문득 6·25전쟁 때 원인불명의 실어증에 걸렸던 일이 떠올랐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피난길이 한결 수월하셨다고 한다. 북한군이 지근거리에 있어도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니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실어증은 6·25전쟁이 끝나자마자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집의 전어무침은 과연 시원하게 맵고 맛있었다. 매운 전어무침을 먹고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 몸 안의 독소가 땀과 함께 배출돼서인지, 매운 것을 먹고 상쾌해진 기분 탓이었는지 목소리도 한결 편해졌다. “희한하네요. 병도 없는데 목소리가 왜 안 나올까요. 언제쯤 좋아지실 것 같습니까?”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라가 좋아지면 좋아지겠죠.”
응급환자에게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 즉 골든타임이 있다. 골든타임 안에 응급처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나라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이승만 정권은 4·19혁명으로 끝났다. 만약 3·15선거 때 이기붕이 순순히 부정투표를 인정하고 물러났다면 과연 4·19혁명이 일어났을까.
3·15선거 직전, 이승만 대통령은 라이벌인 조병옥씨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대통령 당선을 확정지었다. 문제는 부통령인 이기붕이었다. 이기붕은 고령의 이승만이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이 이승만의 뒤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정투표를 강행했다.
사전투표함에 이기붕을 찍은 표를 대거 집어넣고, 투표함을 바꿔치기하고, 죽은 사람까지 선거명부에 올려 이기붕의 표를 늘렸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국민은 분노하여 4·19혁명이 발발했으며 이승만은 하야하고 이기붕 일가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이기붕과 그의 부인 박마리아는 끝까지 부통령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다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지금 현 시국도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문제는 혼란스러운 정치 때문에 문화까지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농단의 중심에 있던 정부지원 문화·스포츠 사업 분야는 올스톱 상태이다. 최순실 씨와 상관없는 연극·뮤지컬·문화콘텐트 사업까지도 국가지원이 중단되면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골든타임을 맞고 있다. 과연 대통령이 용단을 내려 제때 혼란한 정국을 수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시국을 냉철하고 명석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국정농단 사건으로 문화예술인의 열정까지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길 바란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