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배구협회 사상 협회장의 '탄핵'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서병문 회장은 왜 배구계의 신임을 잃었을까.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지낸 서 회장은 지난 8월 9일 제38대 대한배구협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선거인단 82명 중 81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40명의 지지를 얻었다. 새 회장에 대한 배구계의 관심은 뜨거웠다. 서 회장은 "대한민국 배구의 새로운 백년대계를 만들겠다"며 9가지 공약을 내걸었다.
재정난에 빠진 협회를 살리기 위해 재정 확보 등 모든 약속을 지원했다. 더불어 인사·행정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 건립과 국가대표 전임감독제 실시 등을 약속했다. 배구계는 서 회장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당선 뒤 행보는 이상했다.
집행부 구성부터 잡음을 일으켰다. 서 회장은 지난 8월 열린 대의원총회에서 임원 인준 권한을 위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의원인 박용규 경기도협회장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전임 회장들에게 이사진 구성 권한을 위임했더니 줄 세우기를 했다. 혈연과 지연·학연을 배제한 임원진을 구성한다면 권한을 위임하겠다. 문제가 없으면 인준을 해 주겠다"고 주장했다. 서 회장은 이 요구를 수용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박 회장은 이후 배구협회 사무국에 수시로 새 이사진 구성 여부를 확인했다. 그때마다 사무국은 "아직 인선이 끝나지 않았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대의원들에게 아무런 소식을 알리지 않던 협회는 9월 11일 대한체육회에 신임 이사진 인준을 요청했다. 대의원단은 집행부 선임 과정에서 총회 인준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인사 과정과 더불어 특정 인사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서 회장은 김찬호 경희대 감독을 실무부회장으로 선임했다. 실무부회장은 이번 집행부에서 처음 신설된 직위다. 김 경희대 감독은 이전 집행부에서 두 차례 이사를 맡은 바 있다. 2008년 11월 기술지도이사에 임명됐고, 전임 집행부에서는 경기력향상이사를 역임했다. 협회 정관 25조(임원의 임기) ①은 "회장을 포함한 이사의 임기는 4년으로 하고, 감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1회에 한하여 중임(중임 횟수 산정 시 다른 회원 종목 단체의 임원 경력도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관에 따라 김 감독은 더 이상 이사직을 맡을 수 없다. 맡을 수 있는 보직은 부회장뿐이다. 정관 25조 ④는 "부회장의 임기를 산정할 때 회장으로 활동한 기간은 포함하나 이사 및 감사로 활동한 기간은 포함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대의원단은 서 회장이 자신의 당선을 도운 김 감독의 실권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전무이사를 없애고, '실무부회장' 직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산하 지역협회와 연맹이 기대했던 재정 지원은 거꾸로 갔다. 서 회장은 지역협회에 분기별로 보내는 행정지원금 폐지를 추진했다. 심판 수당은 7만원에서 4만원으로 줄였다. 배구 원로에 대한 예우도 없앴다. 대의원을 맡고 있는 지역협회장과 연맹회장단의 불만이 극에 달한 이유다.
서 회장은 자신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시작되자 뒤늦게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 회장에 대한 대의원단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29일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안이 가결되며 서 회장은 짧은 임기를 불명예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