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배우로서 생애 첫 주연을 맡은 영화가 감사하지 않을리 없고, 기억되지 않을리 없다. 다소 어색하고 아쉬운 연기도 풋풋한 신인이기 때문에 남길 수 있는 추억일 터.
영화 '여교사(김태용 감독)'는 배우 이원근(25)의 스크린 첫 단추를 끼게 만든 작품이다. 시작이 좋아야 과정도 좋고 끝도 좋다. 충무로에서 촉망받는 감독을 만났고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선배 김하늘·유인영과 호흡 맞췄다.
웃어도 속을 알 수 없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매력이 '여교사' 남자주인공이라는 큰 자리를 따내게 만든 원동력이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벅찬 감정을 진심으로 표현할 줄 아는 배우. 이원근의 앞 날에 예약돼 있는 꽃길이다.
- '여교사'가 사실상 스크린 첫 데뷔작이다.
"시사회 날 심장이 떨려 죽는 줄 알았다. 영화를 보는데 온 몸이 힘이 들어가서 그런지 자세도 엄청 불편했다. 설레임 만큼 영광스러운 마음도 있다."
- 오래 전에 찍은 작품이다.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그래서 그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스스로 좀 더 생각할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떤 점이 발전했는지,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눈에 띄더라. 시간이 멈춰있는 기분이었다. 공중에서 회전하는 듯한 기분이 계속 들더라.(웃음)"
- 먼저 개봉한 '그물'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나.
"전혀 달랐다. 준비하고 시사회에 참석해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지의 하루가 꿈만 같았다. 김태용 감독님과는 촬영 후에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우리가' 만들고 고생하고 찍은 작품이라는 애정이 크니까 뭉클하기도 했다. 감독님은 지금도 나이가 어린데 1년 반 전에는 더 어렸던 것 아니냐. '우리 형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겠다.
"너무 소중하다. 몇 년이 지나고 몇 십년이 지나도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발점이 될테니까."
-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했다.
"오디션을 볼 때 감독님과 두시간 가량 수다만 떨었다. 대본은 그 후에 읽었다. 감독님은 연기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하셨다. 내가 어떻게 자랐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재하와 공통점은 무엇인지 보시는 것 같더라."
- 공통점이 있었나.
"어릴 적 여자친구가 있는데 다른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감독님께서 재하와 비슷한 상황이 한 번이라도 있었냐고 물어 보셔서 솔직하게 다 고백했다. 감독님이 '그 포인트를 꼭 생각해'라고 하시더라. 왜 사람이 한꺼번에 두 가지를 좋아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강아지가 귀여운데 저 강아지도 귀여운. 그 감정을 감독님이 철저하게 이용하셨다.(웃음)"
- '남자 은교' 같다는 말도 나온다.
"감독님 말씀하신 것 중에 또 한 가지가 '어린아이 같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손도 말투도 어려 보였으면 좋겠다. 이 친구는 어머니가 없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어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거나 혹은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는 전제가 있었다. 어느 면에서는 비슷할 수 있을 것 같다."
- 유인영에 대한 감정이 조금 의아하다.
"사실 과거신이 있었다. 영화 속 시기보다 조금 더 어릴 때 혜영(유인영)을 만났고 혜영에게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다. 근데 과거신이 사라지면서 재하와 혜영이의 관계가 관객들에게는 깊이있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연기할 때는 어렵지 않았나.
"철저히 재하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재하는 혜영에게 무턱대로 사랑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감독님도 그런 느낌을 원하셨고. '엄마, 이거 사줘'가 아니라 '엄마, 나 이렇게 할 테니까 이거 사주면 안돼?'라는 뉘앙스다. 미묘한 차이가 있지 않나."
- 감독은 또 어떤 것을 요구했나.
"'어렸으면 좋겠다. 아이 같은 말투가 좋다'는 부분을 강조하셨다. 또 '재하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럴 수 있어. 그걸 네가 기억했으면 좋겠어'라고 디테일하게 신경써 주셨다. 개인적인 욕심이 다 드러나지 않아 아쉬움은 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