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전지훈련이 열리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구시카와구장. 15일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다부진 체격의 남성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 2006년 WBC 대회에서 대표팀의 초대 주장으로 활약한 이종범(47·MBC SPORTS+ 해설위원)이었다. 그를 발견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 위원은 "방송 일정 때문에 오키나와를 찾았다. WBC 대표팀을 보고 싶어서 잠시 들렀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WBC 대회에 남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다. 2006년 한국 나이 서른일곱이었던 이 위원은 WBC 대표팀에 발탁돼 주장을 맡았다. 그는 대표팀의 '군기 반장' 역할을 자처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다. 그는 "당시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국가를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며 "최고참으로 대회를 참가해 주장을 맡게 됐다. 후배들에게 유니폼 뒤의 이름보다 앞에 새겨진 'KOREA'를 먼저 생각하자고 당부했다"고 회상했다.
이 위원은 "지금 생각해 보면 2006년 함께한 WBC 멤버들에게 고맙다"며 "주장은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친구·동료의 신뢰가 없으면 안 된다. 나는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동료들이 너무 잘해 줬다"고 했다. 이 위원이 넘겨준 WBC 주장 완장은 손민한(2009)과 진갑용(2013)을 거쳐 두산 소속의 김재호(2017)에게 왔다. 이 위원은 "김재호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성실한 선수 아닌가. 대표팀 선수들이 훈련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가교 역할을 잘할 거다"고 말했다.
2006년과 2017년 사이에는 11년의 세월 차가 있다. 그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2006년 대표팀을 이끈 김인식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도 지휘봉을 잡았다. 이 위원은 "감독님은 당시와 지금이 똑같다"며 "최고의 선수가 모였기 때문에 당연히 잘할 거라 믿으셨다. 잔소리 하나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감독님을 어떻게 편하게 해 드릴까'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번 WBC 대표팀 선수들 역시 같은 생각이다. 베테랑 김태균(한화)은 "감독님께서 '자율'을 강조하신다. 선수들은 자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했다.
2006년 WBC 대표팀은 숙적 일본을 연파하고 종주국 미국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일본과 세 번이나 맞붙는 이상한 대진 탓에 결승행이 무산됐지만 4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당시 멤버는 화려했다. 박찬호(샌디에이고·이하 당시 소속팀)와 김병현(콜로라도)·서재응(LA 다저스)·김선우(신시내티)·최희섭(보스턴) 등 빅리거가 대거 포함됐고, 이승엽(지바 롯데)과 이종범(KIA)·구대성(한화)·이병규(LG)·박진만(삼성) 등 프로야구 최고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캡틴 이종범도 찬란하게 빛났다. 1라운드 한일전에서 가볍게 안타를 치고 나간 뒤 이승엽의 홈런으로 홈을 밟으면서 일본의 콧대를 꺾었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미국을 맞아 감기로 인한 목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4타수 2안타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4강 진출의 마지막 관문에서 다시 만난 일본을 상대로는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0-0으로 맞선 8회 1사 2·3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2루타를 터뜨려 승리를 이끌었다. 안타를 확신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상대는 일본 최고 구원투수 후지카와 큐지였다.
이 위원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신께서 내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4강 진출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승리해 4강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는 단체 운동이다. 서로 신뢰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 팀을 결속시켜 주고 결국 끈끈해진다. 1회 대회는 후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됐다고 생각한다. 미국·중남미 선수보다 체격에선 열세지만,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고 강조했다.
이번 WBC 대표팀 전력은 앞선 대표팀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대표팀 유니폼을 받는 순간 느낌이 온다. 다들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며 "상대를 만날 때 힘을 발휘할 것이다. 특히 일본을 만나면 더욱 힘이 생긴다. 당시 우리는 예선·2라운드·4강전 모두 일본전에 포커스를 맞췄다. 국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느낀다"고 말했다.
2006년 WBC 대표팀의 선전으로 프로야구는 중흥기를 맞았다. 관중은 증가세로 돌아섰고, 야구를 하려는 유소년이 대폭 증가했다. 이 위원은 "올림픽에서 야구는 정식 종목 지위가 불안정하다"며 "WBC는 4년에 한 번씩 꾸준히 열리고 있다. 대표팀의 선전은 어린 선수가 야구를 선택할 수 있는 동기부여와 계기가 된다. 또한 세월이 지나 내가 죽어도 WBC에서 남긴 흔적은 있지 않은가. 뿌듯하다"고 자평했다.
WBC 대표팀의 지상 과제는 1라운드 통과다. 2006년 대회 주장 이 위원은 '큰 목표'를 갖길 희망했다. "1라운드를 잘 치렀으면 좋겠다"고 밝힌 그는 "일본 라운드를 넘어 미국에서 열릴 챔피언 라운드 진출을 목표로 했으면 좋겠다.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다. 각자 대표팀에서 로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재응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아 로망을 이루었다. 후배들도 이번 대회에서 저마다 가지고 있는 로망을 꼭 이루길 바란다"며 선전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