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얻은 별명이다. 대표팀 구원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10⅓)을 던졌다. 평균자책점은 1.74. 장기인 투심패스트볼은 쟁쟁한 현역 메이저리거들이 치지 못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정 코치는 현재 삼성의 오키나와 캠프에 합류 중이다. WBC 대표팀도 오키나와에 있다. 20일 만난 정 코치는 "당시엔 ('국민노예'라는 별명이) 부담스러웠다. 나보다 더 많이 등판한 투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감사하다. 별명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선수도 많지 않은가. 지금 돌이켜 보면 WBC 덕분에 이름을 알리고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국민노예'라는 별명은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도움으로 탄생했다. 당시 열린 WBC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민적인 관심이 쏠린 대회였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 코치는 의외로 편안한 마음으로 공을 던졌다. 그는 "당시 대표팀에서 제일 못 던지는 투수가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흔들리면 오승환, 정대현 같은 최고 투수들이 뒤를 받쳐 줄 것이라 믿었다. 매 경기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한 건 사실이지만 부담감이 크진 않았다"고 했다.
포수 박경완과 강민호에게도 공을 돌렸다. 정 코치는 "같은 야구선수지만 처음 한 팀이 된 선수들이 낯설었다. 그때 박경완 선배가 정말 잘 챙겨 줬다. 강민호도 힘을 줬다. 정말 포수 사인대로만 던졌다. 동료들 덕분에 임무를 잘해 낼 수 있었다"고 웃었다.
자신의 투구에만 집중하자 결과가 따라왔다. 한국은 1라운드 두 번째 경기에서 일본에 2-14로 콜드패 했다. 하지만 순위 결정전에서 1-0 신승으로 설욕에 성공했다. 정 코치는 이 경기에서 선발투수 봉중근에 이어 등판해 1⅓이닝을 실점 없이 막았다. "류현진이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할 만큼 사활을 건 경기였다. 6회초 공격에서 득점 기회를 놓쳤을 때 일본팀의 기세가 오를 수 있었다. 다행히 잘 막아 냈다. 이 등판으로 자신감이 붙었다"고 돌아봤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도 흔들리지 않았다. 치욕적인 콜드패 뒤에도 차분하게 선수단을 독려했다. 정 코치는 "감독님이 '1-0으로 지든, 콜드패를 하든 똑같은 1패다. 책임은 내가 진다. 다음 경기에서 이기자'고 했다. 여론이 안 좋았던 게 사실이지만 쫓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난 19일 대표팀이 요미우리에 완봉패 한 뒤에도 '순리대로 가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 감독의 그런 말이 선수단이 부담을 덜어 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어감이 다소 좋지 않지만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함께 만든 별명이다. 정 코치는 2017 WBC 대표팀 선수들에게 "부담을 이겨 내면 제 실력을 발휘할 것이고, 성장이 따라올 것이다"며 응원했다. 튿정 투수를 지목하진 않았지만 차기 '국민노예'가 될 선수의 조건도 제시했다. "대회가 끝난 뒤에도 건강한 몸으로 소속팀에 복귀해야한다"고 했다. 소속팀 투수 우규민과 심창민을 향한 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