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광고모델로 데뷔, 외모 하나 믿고 연예계에 발을 들인 배우 오지호(40)는 어느 덧 데뷔 19년 차 중견 배우가 됐다. 말 많고 탈 많은 연예계에서 여러 사건 사고를 겪었지만 자신 만의 입지를 다지며 버텨냈다. 그 사이 불혹의 나이가 됐고,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책임감도 생겼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 중인 '배우'다.
잘생긴 외모와 시선을 사로잡는 피지컬은 오지호를 멜로영화 주인공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연기의 '연'자도 모르던 시절, 뚝 떨어진 주연 기회는 그에게 슬럼프를 안겼다. "1년간 공식적인 공백기를 가졌고, 3년 동안은 술을 끊었어요. 스타와 배우의 갈림길에서 '스타가 된 후 배우를 하자'는 마음이었죠." 대중은 몰랐을 오지호 나름의 피터지는 노력이 지금의 오지호를 만들었다.
멜로로 시작했지만 다시 멜로로 돌아오기까지 16년이 걸렸다. 브라운관에서 사랑 이야기를 선보인 적은 많지만 정통멜로는 아니었다. 사랑을 '맹신' 한다는 오지호는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 사랑이 좋아요. 로맨틱한 면도 있고요. 이 맥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마실 수 있을까요?"라며 사랑학 개론을 펼치기도 했다.
오지호에게 사랑만큼 중요한 자산은 '인연'이다. 16년 전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난 김남주와는 자녀의 교육을 걱정하는 학부모 동료 사이로 발전했고, 예능 프로그램으로 뭉쳤던 천하무적 야구단 팀도 여전히 교류 중이다. WBC 네덜란드 전을 관람하러 가게 될 것 같다며 흐뭇해 한 오지호는 자타공인 '야구광'이기도 하다.
결혼과 딸 서흔은 오지호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 준 소중한 선물. 특히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오지호가 진심으로 감사해 하는 작품이다. "'슈퍼맨'이 아니었다면 전 빵점 아빠였을 거예요. 제가 빵점 아빠인 줄도 모른 채 살았겠죠." 서흔을 배우로 키우고 싶다며 딸의 미래 계획을 술술 읊고 혼자만의 고민까지 시작한 오지호는 타고난 로맨티스트였다.
-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주량은 공식적으로 소주 한 병이요. 비공식적으로는 저도 잘 몰라요.(웃음) 세 병도 마시고 네 병도 마시고. 정해놓고 마시지는 않죠. 자리에 따라 다르기도 하구요. 잘 맞는 사람들과 마실 때는 즐거우니까 10병이 쌓여 있을 때도 있어요."
- 잘 맞는 사람들의 예가 있나요. "'커피메이트' 찍을 때 이현아 감독님, 윤진서 씨, 스태프들와 돈독해졌고 그 만큼 술도 많이 마셨어요. 개인 이야기, 가족 이야기도 많이 했죠. 워낙 자유로운 영혼들이라. 그러다 보니 여기에는 와인병이, 저기에는 맥주 열 병, 스무 병이 쌓여 있더라구요."
- 최근에 가장 많이 마셨을 땐 언제인가요. "영화 '그래, 가족' VIP시사회 때요. 소주를 어마어마하게 마셨던 것 같아요. 늦게 귀가를 했는데 와이프가 '네 시사회도 아닌데 뭘 그렇게 많이 마셨냐'고 뭐라 했어요.(웃음) 그래서 이번에 제 시사회 때는 그 핑계로 더 많이 마셔볼까 생각 중이에요."
- 주종이 있다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소주가 좋아요. 첫 잔은 무조건 소맥을 마시는데 그 다음에는 바로 소주로 달리죠. 맥주는 첫 잔의 시원한 맛만 즐겨요. 계속 마시기에는 무리가 있죠."
- 주사는 무엇인가요. "취하면 자는 편이에요. 다행히 아무데서나 자는건 아니고 꼭 집으로 돌아가죠. 이건 어렸을 때 환경 때문인 것 같기는 해요. 아버지가 술꾼이셨거든요. 누나·남동생 모두 술·담배를 안 하는데 저만 아버지를 닮았어요. 아버지가 평소에는 엄청 조용하신데 술만 마시면 말씀이 많아지세요. '제발 잠 좀 자라'라는 어머니의 말을 하도 들어서 그런지 '난 나중에 술 마시면 진짜 자야겠다'라는 생각을 늘 갖고 살았죠.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혼술도 즐기나요. "요새 유행한다고 하는데 저는 진짜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혼자 드시는 분들을 많이 보기는 해요. 일본에 친한 형님이 계신데 가끔 일본여행을 가면 그 집에 꼭 방문하거든요. 그 분이 그렇게 혼술을 드세요. 그래서 '왜 혼술 하세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냥 먹어' 하시더라고요. 습관이고 그 사람의 라이프인 것 같아요. "
- 물이나 음료수처럼 마시는 분들도 계시죠. "맞아요. 전 술을 즐기기는 하지만 '내가 술 자체를 좋아하는건가?'라고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어요. 저도 예전에는 술을 굉장히 많이 마셨는데 3년간 큰 결심을 갖고 술을 입에도 안 댔거든요. 2004·2005·2006년 이 때였는데 금주를 선언하고 한 방울도 안 마셨어요. 술자리도 아예 안 갔죠. 그 이후에 먹긴 먹는데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못해요."
-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12년 정도 전이니까 딱 30살 때네요. 영화 '미인'을 찍을 때 여균동 감독님이 '너는 마라톤 같은 배우가 돼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다가 '아이 러브 유'라는 작품에 들어갔어요. 곧바로 슬럼프가 찾아왔고요. 1년을 쉬었고, '두 번째 프러포즈'로 어렵게 복귀하고 나서 스타와 배우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했죠. 그 때 3년간 술을 안 마시면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 슬럼프가 굉장히 갑작스럽게 찾아 왔네요. "'미인'은 연기와 배우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지 내가 갖고 있는 내 신체적인 조건으로만 시작한 작품이에요. 그래서인지 '아이 러브 유'를 하는데 누군가 나를 망치로 때리는 기분이 들었죠. '네가 무슨 연기를 하냐. 넌 못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죠. 실제로도 연기를 너무 못했구요.(웃음) '아, 이건 아니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라는 마음에 매니지먼트에 이야기 하고 저만의 공식적인 휴식기를 가졌어요."
- 연기 공부를 한건가요. "공부도 하고 마음정리도 하구요. 나름 피나는 노력을 하고 다시 나와서 시작 하려는데 1년 반이 또 훅 지나갔어요. 일이 뚝 끊긴거죠. 단막극을 하긴 했지만 '관심을 받았을 때 잘했어야 하는건데'라는 후회가 들더라고요. 제가 죽은 줄 알았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웃음) 물론 그 숫자도 적었을테지만 절 아시는 분들은 그렇게 말씀해 주셨죠."
- 그 사이 경쟁자는 더 많아졌겠네요. "1년 반 동안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고 성장했겠어요. 답답했죠.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을 난 이제야 알았는데 관심을 못 받으니까. 그러다 감사하게도 '두번째 프러포즈'를 만나 활동할 수 있게 됐어요. 그 때 여균동 감독님 말씀이 다시 떠올랐죠. '슈퍼스타가 돼야겠냐, 배우가 돼야겠냐'는 두 기로를 놓고 봤을 때 결론은 '스타가 된 다음에 배우가 되자'는 거였어요."
- 둘 다 포기할 수는 없었나봐요. "인생은 길게 봐야 하니까.(웃음) 일단 난 영화를 너무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드라마를 위주로 선택해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어요. 거꾸로 배우가 된 후에 스타가 되는 것은 내 상황에서 더 어려운 일이라 판단했죠. 30살부터 40살까지는 브라운관 내공을 쌓았고, 40대가 되면서 '다양한 영화를 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했어요. 10년을 주기로 큰 계획을 세워요."
- 지난 10년의 목적은 달성했네요. "어느 정도는요. 앞으로도 좋은 드라마가 있으면 당연히 계속 할테지만 영화를 위한 힘을 비축해 놓을 생각이에요. 운동도 다시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제대로 못 했거든요. 바쁘기도 하고 챙겨줘야 할 사람이 많으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머리카락도 길고 몸도 키우고 있어요."
- '아이 러브 유'는 여러모로 엄청 특별한 작품일 것 같아요. "아픈 손가락이죠. 작품 자체도 어려웠고 그 역할을 소화하기에는 제가 어리기도 했구요. 크로스 오브 사각 스토리라면 이해 하시겠어요? 완전 정통멜로.(웃음) 스타트를 끊은 '미인'은 나에게 준 것이 많은 영화예요. 첫 주연을 맡기도 했고, 장르는 에로틱했지만 감수하고 인정하고 들어 갔으니까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구요. '아이 러브 유'는 '나 진짜 영화배우가 된 건가?'라는 자만심에 빠지려던 찰나 저를 굉장히 아프게 했어요. '그래, 세상이 그렇게 쉬운게 아니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죠."
- 김남주·이서진 씨와 함께했죠. "맞아요. 근데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해요. 남주 누나가 이 작품 때문에 다시는 영화 안 하잖아요. 하하하. 농담이에요. 드라마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엄청 반가웠죠. 남주 누나와는 지금도 통화해요. 최근에 딸 서흔이 돌이었는데 반지 주겠다고 따로 전화가 왔더라고요. 자식 교육 때문에 너무 바쁘다고, 제 때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 영화를 찍을 때 김남주 씨도 힘들어 했었나요. "다 힘들어 했어요. 무려 1년을 찍었고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많았거든요. 누적관객수가 3만명 정도 들었던 것으로 알아요. 그래도 서진이 형이랑 남주 누나는 그 다음에 주말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바로 히트쳤어요. 대박났죠. 저 혼자 '어휴!' 하면서 살고. 재미있는 추억이에요."
- 3년 금주 후 음주를 시작할 땐 힘들지 않았나요. "다시 손에 잡았던건 와인이에요. 제가 와인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그 때 지인들이 '와인에 한 번 도전해봐'라고 추천해 주시더라고요. '신의 물방울' 인가요? 만화책도 봤는데 저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웃음) 이름도 어렵고. 맛도 쓰고. 이현아 감독님과 진서 씨는 와인에 조예가 깊어요. 같이 와인을 마시면 두 분은 몇 년도 산이 좋고, 가격은 어떻게 다르다고 이야기 하는데 전 그 옆에서 '다 쓴 것 같은데. 이 맛이 이 맛 같고 저 맛이 저 맛인데' 했죠. 하하."
- 따지고 보면 16년 만에 다시 정통멜로를 선택한 거네요. "멜로는 정말 어려워요. 시나리오도 많이 없고 신선한 멜로는 더욱 찾기 힘들죠. '커피메이트'도 '커피숍에서 말로만 사랑을 나누는 영화예요'라고 소개하면 '그게 뭐야?'라고 하면서 다 재미없게 생각해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영화를 보면 분명 독특한 구석이 있어요."
- 그런 신선함이 좋았나봐요. "이 영화를 찍은 이유이기도 해요. 멜로는 관객들 마음에 뭔가를 콕 넣을 수 있어야 하거든요. 현재에서 찾은 아날로그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랑은 급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 크게 바라는 점도 없어요. 하지만 우리 영화를 통해 멜로라는 장르를 지루해 하지 않고, 사랑에 대해 조공감해 주셨으면 해요."
- 감독님은 오지호 씨가 잘생겨서 캐스팅 했다고 했어요. "뭐 아주 아니지는 않은 것 같고.(웃음) 의외로 여린 면을 보셨다고 해요. 오지호가 갖고 있는 여린 면이 희수와 잘 어울릴 것 같았고 잘 표현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요. '저에게 여린 면이 있어요?'라고 되묻기도 했는데 하다 보니까 정말 저에게 희수와 같은 감성이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제 모습이었어요."
- 사실 '커피메이트'의 두 주인공은 '착한 캐릭터'로 분류되는 인물은 아니에요. "희수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도 않아요. 감추고 있죠. 감독님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원래 대사에는 있었거든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후 '이건 내 세계가 아니다'고 생각하면서 외국으로 떠나죠. 외국에서 일을 하다가 만난 여자와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시 돌아와 아무 생각없이 그냥 만든 의자가 팔리면서 목수가 되는 거예요. 크게 뭘 해야 되겠다는 의지나 목표도 없죠. 난 그 지점에서 희수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 어쨌든 그도 아팠다는 뜻인가요. "상처를 준 만큼 받았다고 생각해요. 상처를 줬지만 '난 그들의 감정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너무 성공해서 잘 살지 않았을까요? 근데 제가 본 희수는 누군가 치유를 해 줘야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인물이었어요."
- 표현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 불쌍한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순간에 집중했죠. 웃지 않는 희수가 게임을 하면서 처음 웃잖아요? 가장 행복했던 때라 생각해요. 하지만 인영은 유부녀고, 그녀가 좋아지고 사랑하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주지 않을까 싶어 포기하고 멈추죠. 그런 매력이 더 와 닿았어요."
- 희수의 미래도 그려지지 않죠. "'희수라는 인물이 인영이 만들어낸 허구는 아닐까?'라는 의심도 해 봤어요. 순전히 제 시점인데 외로운 인영이 만들어낸 상상 속 인물일 수도 있잖아요. 만약 희수에 대한 이야기까지 풀어냈다면 재미없는 영화가 됐을 것 같아요. 너무 다 말해주고 알려주면 허탈하잖아요."
- 손편지를 직접 써 본 적도 있나요. "영화 속 손편지도 제가 직접 썼어요. 그 암호가 생각보다 쉬워요. '이'는 동그라미에 가운데 선을 그었고, '스'도 시옷 아래에 점을 찍는 식으로 표현했어요. 소소한 재미가 될 것 같아요."
- 빙고게임은 굉장히 로맨틱 했어요. 그런 로맨틱함이 실제로도 있다고 생각하나요. "당연히 있죠. 그거 없으면 결혼 못 했어요. 노총각으로 살았을 거예요.(웃음) 그 장면을 여성 분들이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요. 진짜로. 이런 질문을 하실 줄도 몰랐어요. 이게 웃긴게 뭐냐면 결국 해석이거든요. 남자와 여자는 정말 다른 것 같아요."
- 그렇다면 더 성공적이네요. "예를 들어 내가 아끼는 어떤 후배가 있는데 뭐가 묻어서 자연스럽게 닦아 줬어요. 난 의도치 않은건데 그 후배는 '어? 혹시?'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그건 진짜 어떠한 의도와 계산도 없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빙고신도 그래요. '나 지금 안 지웁니다. 두근거릴 준비 하세요'라는 것을 노렸다면 다 티가 났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