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협회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회장이 논란이 된 메리트(승리 수당)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월 회장으로 선출됐다. 공식 임기는 2년이다. 그러나 이날 오전 협회 사무국에 전화를 걸어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1년 4개월 만에 회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이 회장은 협회를 통해 "이번 일로 본의 아니게 야구팬들과 야구 관계자 분들을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최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실패뿐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선수들의 입장만을 성급하고 오해를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주장했다는 점을 반성한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어 "야구팬 여러분께 사랑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수협회는 최근 승리 수당, 일명 '메리트'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여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난달 말 "선수협회 이사회가 '구단이 적절한 보상 없이는 팬사인회 등 구단 주최 행사를 거부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이를 구단에 통보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선수협회 반박 보도자료를 곧바로 내고 "메리트 부활을 요구한 적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어 지난달 30일 이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팬을 볼모로 구단과 협상하지 않았다. 메리트나 보이콧이라는 단어는 우리 회의에서 나오지도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충수를 뒀다. "구단과 선수단 사이에 정이 사라졌다" "메리트 제도는 애초에 선수들이 원해서 만든 제도가 아니었다" "메리트 제도 폐지로 수입이 갑자기 줄어든 선수들이 있다. 선수들의 복지에 좀 더 신경 써 줬으면 좋겠다"며 선수들을 그저 '피해자'로 간주하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메리트 제도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메리트를 대체할 만한 팬서비스 수당을 요구할 생각이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여기에 일부 선수협회 대의원들이 실제로 금전적인 추가 보상을 구단에 요구한 정황도 드러났다. 가뜩이나 싸늘하게 식었던 팬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회장의 리더십도 큰 타격을 입었다.
올해 KBO 리그는 쉽지 않은 환경에서 출발했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안방에서 열린 WBC 1라운드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한 탓에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선수협회가 야구규약이 금지하는 메리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달 31일 개막한 KBO 리그 개막 3연전 평균 관중은 지난해 1만5536명에서 1만2996명으로 16.3% 감소했다.
갑작스러운 이 회장의 사퇴로 선수협회는 아직 후임 회장을 정하지 못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선뜻 회장직을 맡겠다고 나설 만한 인물을 찾기도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