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을 앞두고 "시나리오는 마음에 안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킨 드라마를 마쳤을 때도 "인기 거품을 제대로 즐길 생각이다"고 당당하게 밝혔던 진구(38)다.
시선이 달라져도, 환경이 변해도 진구는 진구다. 예나 지금이나 입바른 소리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전하려는 솔직함이 매력적이고, 배우로서 끊임없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고민 하면서도 현장에서는 최대한 놀고 즐기려는 한량 같은 성향도 여전하다.
지난 달 29일 개봉한 영화 '원라인(양경모 감독)'은 흥행면에서 썩 기분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는 못하지만, 영화를 이끈 진구를 비롯해 임시완·박병은 등 배우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좋은 인연을 만들었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 '원라인'은 왜 선택했나.
"회사에서 욕심을 냈다.(웃음) 솔직히 시나리오를 받고 읽었을 때 난 별로였다. 꼭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감독님을 만나 왜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은 '그냥 너야. 지금 모습 그대로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라고 하시더라. 그 땐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 지금은 알고 있나.
"내 마음대로 알아서 놀라는 뜻이었다. 결국 감독님에게 설득을 당했으니 출연을 하게 된 것일텐데 현장에서 놀아 보니까 편하고 편하고 재미있었다. 완성된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좀 더 짜임새 있고 메시지도 담겨 있어 좋더라."
- 양경모 감독은 신인 감독임에도 주저함이 없더라.
"내공이 느껴졌다. '원라인' 만큼은 감독님이 신이다. 나보다, (임)시완이 보다 감독님이 더 잘 알고있고 많이 알고있다. '이 사람에게 맡기면 되겠구나. 이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정답이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 현장에서도 그 생각은 변함 없었나.
"첫 인상은 좀 선생님 같았는데 정말 그렇더라. 사실 촬영을 하다 보면 한 마디 정도는 욕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감독님은 단 한 번도 욕을 하지 않으셨고, 우리 촬영장은 욕설이 없었던 현장이었다."
- 내 아이디어로 캐릭터를 수정한 부분이 있다면.
"없다. 내가 바꾼 것은 전혀 없다. 그 동안 적지 않은 작품을 했지만 가장 나를 다 보여준 작품이다. 그 밑그림은 감독님이 이미 완성해 놓고 있었다. 평소 내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어떤 점이 가장 비슷한가.
"촉이 좋다는 것?(웃음) 작품보는 촉만 안 좋고 그 외 촉들은 좋은 편인 것 같다. 작품은 이게 잘 될지 안 될지 모른채 무작정 하는 것이고. 왜 감이라고 하지 않나. 눈치가 빠르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어떤 사람을 보면 '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는 대강의 판단이 선다. 대부분 맞더라."
- 중점을 두고 고민했던 지점은 무엇인가.
"장과장은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외 그 이전의 캐릭터 스토리가 없어 답답했다. 그래서 감독님을 찾아 갔고 감독님이 직접 만난 전설의 작업대출 베테랑 이야기를 해 주셨다. 굉장히 거만하고 의사·변호사 등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도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을 한다더라. 나이는 가장 어린데 백팩에는 만 원짜리가 가득하고. 캐릭터로 따지면 민재(임시완)인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장과장은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윤곽이 잡혔다."
- 결국 캐릭터는 배우가 만들어 내가 하니까.
"'인간답지 않은 일을 인간답게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내가 생각한 장과장이었다. 그것도 나와 굉장히 비슷하다. 내가 평소에 거짓말을 진짜 못하는데 따지고 보면 연기는 그 자체가 거짓말 아닌가.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고. 거짓말 같지 않은 거짓말을 잘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 장과장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나.
"궁극적으로는 선하다고 본다. 여러가지 증명할 수 있는 이유들이 영화에 나온다. 마지막에 시완이에게 설득을 당하는 부분도 결국 내면에 선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 불법적이 일을 하지만 양심은 있는?
"복귀하기 전 숨어 지내는 아지트의 인테리어만 봐도 그렇지 않나. 트럭에 돈이 쌓여 있지만 쓰지 않고, 후진 차를 타고 정육점 같은 곳에서 숨어 산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캐릭터도 아니고 돈은 그저 장식품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양심은 있는 놈인 것 같다." - 촬영장에서는 어떤 스타일인가.
"슛이 시작되면 다 내려 놓는다. 그 전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는데 첫 촬영이 시작되면 나 한 사람 보다는 영화 전체를 생각한다. 나 하나 잘 나와 보겠다고 애쓰지 않는다. 오늘 뭔가 잘 못했다 싶으면 '내일 것 잘하지 뭐'라고 넘기고, 내일 못하면 '모레 잘하지 뭐'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는 얻어 걸리더라. 사람이 또 계속 잘하면 지루하지 않나.(웃음)"
- 본인이 생각하는 '원라인'의 명장면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엔딩신이 기억에 남는다. 시완이에게 내가 배우고 깨닫는 그 장면이 사제지간이라는 포인트와도 잘 맞는 것 같다. 제자에게 한 수를 배우고 해결이 되는 신 아닌가. 장과장이 계단을 오르기 전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데 그 장면이 확 와 닿더라."
- '원라인' 전체의 포인트를 꼽는다면.
"현장에서는 의아했던 것이 감독님이 특별한 주문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니까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더라. 범죄 오락물, 케이퍼 무비로 분류되지만 확실한 차이점은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전 작품들이 '권선징악' 정도에 머물렀다면 '원라인'은 돈과 사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런 내용인 줄은 나도 몰랐다. 하하."
- 직접 참여한 배우로서도 신선하게 느껴진 것인가.
- 내가 시나리오를 별로 잘 못 봤다고 하지 않았나. 그저 시시껄렁한 케이퍼 무비로만 봤는데 감독님에게 정확한 포인트가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많은 주문을 안 하셨던 것 같다. 그걸 나도 영화를 보고 알았다. 감독님에게 우리들이 다 감겼다. 감독님이 술·담배를 전혀 안 하시는데 시완이랑 둘이 '앞에서는 안 하는 척 뒤에서 할 수도 있을 것 같지 않냐'라는 말도 했다.(웃음) 그 만큼 영화에 만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