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영화계가 어느 때보다 시끌시끌하다. 크고 작은 소식들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감독 개인의 문제부터 영화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문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은 감독 SNS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흥행에 참패했다. 주인공 갤 가돗이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 논란에 휩싸이면서 해외 일부 국가에서 상영 보이콧을 선언한 '원더우먼'은 국내에서 별 이슈 없이 흥행 순항 중이다. 멀티플렉스 극장 개봉 자체가 무사될 위기에 놓인 '옥자'는 결과를 떠나 홍보 하나만큼은 확실히 했다. 넷플릭스의 배만 불려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안타깝다.
천국과 지옥 오간 '불한당' 누적 관객 91만 명
'불한당'은 꿈의 무대를 밟았다는 데 의의를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봉과 동시에 터진 감독의 SNS 저속 발언 논란은 관람 보이콧, 불매운동으로 이어졌고 예매율이 뚝뚝 떨어지면서 차트아웃됐다. 칸국제영화제 효과로 반등을 노렸지만 다시 국내 관객들의 환심을 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아선 관객들의 대규모 움직임이 얼마나 무서운지 영화계는 이번 '불한당' 사태로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한 관계자는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은 작품성은 이미 인정받고 들어간다는 걸 의미한다. 다만 '불한당'은 누아르 장르로 오랜만에 신선함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인 것은 맞지만 굉장한 명작은 아니다. 배우들의 티켓 파워도 모든 것을 뛰어넘기에는 부족했다고 본다. 그래서 이병헌의 '내부자들'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이다"라며 "일부 관객들은 '어차피 안됐을 영화'라고도 말한다. 누군가는 '감독 때문에 망했다'는 핑계라도 대지 않을까 싶다"고 귀띔했다.
시오니스트 논란 '원더우먼' 신기록 행진
'원더우먼'은 내부 분열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나서 상영 보이콧을 진행하고 있는 영화임에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역대급 흥행 행진을 펼치고 있다. 북미에서는 당초 예상을 휠씬 뛰어넘는 1억 달러 이상의 오프닝 성적을 거뒀고 전 세계적으로 개봉 첫 주 만에 흥행 수익 2억2300만 달러를 거둬들이면서 개봉 첫 주 만에 제작비 1억4900만 달러를 전액 회수했다. 역대 여성 감독 영화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한 기록이기도 하다.
'원더우먼'이 부정당하고 있는 이유는 주인공 갤 가돗이 시오니스트이기 때문. 시오니스트는 유대 민족주의자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인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을 뜻한다. 갤 가돗은 지난 2014년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자 지구에 폭격을 가했을 때 자신의 SNS에 이스라엘 방위군을 응원하는 글을 올렸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백린탄 폭격으로 발생한 사망자 수는 2000여 명에 달했고 그 중 500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테러와 무관한 어린아이로 밝혀져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갤 가돗은 이스라엘 국적으로 과거 이스라엘 군으로 복무한 경험도 있다. 또 외신을 통해 논란이 불거진 후에도 특별한 반응을 내비치지 않은 태도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레바논은 내무부가 안보부의 권고를 받아 '원더우먼' 상영을 최종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은 울지만 그 목소리가 전 세계에 닿고 있지는 않은 모양새다. 국내에서도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았고 15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옥자 VS 빅3' 양보 없는 신경전 누가 이길까
6월 한 달은 '옥자'로 시작해 '옥자'로 끝날 전망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요청과 넷플릭스의 허가에 따라 6월 29일 국내 극장과 넷플릭스 동시 개봉을 확정지었지만 국내 극장 산업의 전체 91%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CJ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반기를 들면서 난항에 빠졌다. 대형 멀티플렉스를 소유 중인 일명 빅3 극장들은 "영화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동시 개봉은 안 된다"며 '옥자'에 관을 내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
국내 배급을 담당한 NEW 측은 이해관계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봉일 전까지 끊임없는 논의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옥자' 측의 한 관계자는 "배급사 간의 문제이긴 하지만 영화에 대한 자신감은 있다. 막무가내로 영화를 틀어 달라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면 분명 욕심이 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 멀티플렉스 측 관계자는 "봉준호 감독 영화이기 때문에 문제로 비쳐지는데 기존 넷플릭스 영화였다면 논의 가치도 없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동시 상영은 없다"고 단언했다.
업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애초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기획된 것을 극장에서도 보여 달라는 것이 무리수다" "12세 교육용 영화라고 하는데 상업적 가치가 정말 있을까"라는 반응도 있고, "어차피 어느 정도의 흥행은 할 것이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많은 만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극장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상영해 대기업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 주자"는 응원도 있다.
멀티플렉스 상영이 확정된다면 '옥자'는 넷플릭스와 극장 동시 개봉 시대를 여는 첫 영화가 될 것이고, 흥행까지 성공한다면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또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극장에서만 상영했음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거둔다면 이 역시 의미는 크다. 7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이슈 메이커로 활약한 '옥자'는 수상에는 최종 실패했다. 국내에서는 과연 어떤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 봉준호 감독이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영화를 만들어 냈을지 영화계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