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종가' 잉글랜드와 프리미어리그(EPL)의 '상징' 이라고 불렸던 한 세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각자 젊은 시절을 바쳤던 팀을 떠나 축구와 아름다운 작별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적을 선택했다. 시간과 세월은 세계 축구계를 호령한 '슈퍼스타'도 비껴갈 수 없었다. 웨인 루니(32)와 존 테리(37) 얘기다.
◇루니의 무성한 이적설…사실상 시간문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캡틴' 루니가 팀을 떠날 전망이다. 행선지는 '친정' 에버턴이다. 단순한 '설'이라고 하기에는 소문이 너무 무성하고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영국 매체 더 선은 5일(한국시간) "루니가 에버턴과 이적 협상에 돌입한다. 이미 협상의 거의 다 끝났고 이번주 내에 이적할 것이다. 루니는 맨유의 미국 프리시즌 투어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 선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맨유와 에버턴이 루니 이적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진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계약기간 2년에 1년이 옵션으로 추가되며 이적료는 2650만 파운드(약 394억원)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전해졌다.
또 다른 매체인 타임즈 역시 "주급 문제를 비롯해 여러 장애물이 남았지만 에버턴의 루니 영입 의지는 확고하다"고 거들었다. 만약 계약이 최종적으로 성사된다면 루니는 13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된다. 맨유를 떠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고, 발표는 시간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에버턴은 루니가 프로에 데뷔했던 팀이다. 그는 2002년부터 2년간 에버턴에서 뛰면서 67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했다. 2년 뒤인 2004년 맨유로 이적한 루니는 이후 13년 동안 559경기를 뛰며 통산 253골을 터뜨렸다. 바비 찰튼(80)이 1972~1973시즌 세웠던 맨유 개인 최다골 기록(249골)을 넘어 선 그는 맨유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동시에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축구팬 사랑을 듬뿍 받았다.
이런 천하의 루니도 나이는 거스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루니는 주제 무리뉴(54) 감독이 이번 시즌에 앞서 맨유의 신임 사령탑이 되면서 벤치로 물러났다. 총 39경기에 나서 8골10도움을 기록했다. 한때 루니를 화려하게 수식했던 단어인 왕성한 활동량과 패스 정확도, 중요할 때 마무리 지어주는 경정력 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에버턴은 물론 미국 프로축구(MLS), 중국 슈퍼리그(CSL)는 '한물 간' 루니를 향해 구애를 보냈다. 항간에는 CSL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주급을 약속하며 루니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럼에도 루니는 마지막까지 맨유 잔류를 희망했다. 그는 "나는 이 구단에 13년 동안 있었다. 당연히 팀에 남고 싶고 매 경기에 나서고 싶다"고 맨유를 향한 사랑을 드러냈다. 루니는 7월 초로 예정된 맨유의 프리시즌 일정보다 2주 앞서 개인 훈련에 돌입하는 등 재기 의지를 불사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맨유 구단은 루니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무리뉴 감독이 "루니는 여전히 우리 팀 주장"이라고 '립 서비스'를 했으나 구단은 내년 6월까지 계약이 돼 있는 루니와 재협상 테이블을 차리지 않았다. 루니는 프리시즌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난 자리에서 에버턴 이적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2부리그로 간 테리…'자존심 보다 현역 유지'
EPL에는 루니보다 한 발 앞서 과감한 선택을 한 선배가 있었다. '미스터 첼시' 테리였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소속 애스턴 빌라는 3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테리 영입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1년이며 연봉은 450만 파운드(56억원) 가량이다.
테리에게 첼시는 삶 자체였다. 14세 때 첼시 유소년 팀에 입단한 그는 1998년 첼시 1군에 데뷔했다. 이후 첼시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713경기에서 66골을 터뜨렸다. 이 기간 동안 첼시는 총 14회(EPL 4회·FA컵 5회·리그컵 3회·UEFA 챔피언스리그 1회·UEFA 유로파리그 1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가 첼시를 떠나있었던 건 2000년 노팅엄 포레트에서 임대 선수로 6경기 뛰었을 때가 전부였다.
테리가 첼시에서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 건 안토니오 콘테(48) 감독이 지난해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부터였다. 콘테 감독은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28)와 게리 케이힐(32), 다비드 루이스(30)로 이어지는 3백을 새로운 전술로 꺼내들었고 이 라인업으로 EPL 우승을 달성했다. 백업으로 밀려난 테리의 은퇴설이 불거진 배경이었다.
테리는 은퇴 대신 이적을 선택했다. 그는 지난 4월 자신의 SNS에 '나는 여전히 축구를 할 수 있지만 첼시에서는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라 생각한다'며 이적 의지를 밝혔다. 콘테 감독 역시 "테리는 훌륭한 주장이었다. 문제는 테리가 정기적으로 경기에 나서길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테리의 이적이 공식화 하자 AFC 본머스와 웨스트 브로비치 앨비언, 스완지 시티 등 복수의 구단이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테리의 선택은 2부리그에서도 최약체에 속하는 애스턴 빌라였다. 애스턴 빌라는 구단 자금력 약화로 2015~2016시즌을 끝으로 강등됐다. 지난시즌에도 2부리그 13위에 그쳤다.
테리는 "EPL에서 많은 돈을 주겠다며 제안한 팀들이 있었다. 하지만 1부리그에서 첼시를 상대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거절했다. 나는 돈 때문에 팀을 바꾸지 않는다"며 2부리그로 간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는 36세지만 여전히 경기에 굶주려 있다. 1년 뒤 애스턴 빌라와 함께 EPL로 올라오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