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사이 영(Cy Young)을 기리기 위해 1956년에 만들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투수라면 꼭 한 번은 받고 싶어 하는 명예로운 상이다. 올 시즌에는 보스턴 크리스 세일과 코리 클루버(이상 아메리칸리그)와 워싱턴 맥스 슈어저, LA 다저스 클레이튼 커쇼(이상 내셔널리그) 등이 사이영상 후보로 손꼽힌다.
그러나 '역대급' 활약을 하고도 사이영상과 인연을 맺지 못한 투수들이 여럿 있다. 심지어 사이영상 수상보다 더 힘들다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중에서도 정작 사이영상을 받지 못한 '불운의 투수' 5명을 살펴봤다.
◇ 5위 놀란 라이언
메이저리그에서 27년간 활약하며 통산 324승을 거뒀다. 탈삼진은 통산 5714개. 이 부문 통산 2위 랜디 존슨(은퇴)과 무려 800개 이상 차이가 나 당분간 깨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라이언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시절인 1973년, 1974년, 1977년 등 세 번에 걸쳐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 안에 들었다.
특히 1973년에는 21승16패 평균자책점 2.87에 탈삼진 383개를 기록했지만 볼티모어의 짐 파머에게 밀렸다. 당시 파머가 라이언보다 1승을 더 거뒀고 평균자책점도 2.40으로 낮았지만,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에서 라이언(7.7)이 파머(6.3)를 압도했다. 탈삼진과 투구 이닝 모두 라이언의 성적이 더 좋았다.
라이언이 그해 파머에게 밀린 결정적인 이유는 162개라는 리그 최다 볼넷 탓이다. 통산 11번이나 탈삼진왕에 올랐던 라이언이지만 시즌 최다 볼넷 허용도 8번이나 됐다. 여기에 번번이 발목을 잡힌 셈이다. 그러나 라이언은 1989년 42세의 나이에도 평균자책점 3.20에 탈삼진 301개를 기록하는 위용을 뽐냈다. '텍사스 특급'의 위용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문제없이 입성했다.
◇ 4위 필 니크로
전설의 너클볼 투수다. 빅리그에서 24년간 뛰며 48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했다. 역시나 사이영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개인 통산 318승에 평균자책점은 3.35밖에 안 됐다. 사이영상 투표에서 3차례나 톱5에 들었지만 투표인단은 그를 외면했다. 특히 1969년이 통한의 한 해였다. 23승13패 평균자책점 2.56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지금은 꿈도 꾸기 어려운 완투 경기가 21번에 달했다.
문제는 놀랍게도 니크로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 투수가 한 명 있었다. 뉴욕 메츠의 톰 시버(25승7패 평균자책점 2.21)다. 당시에는 사이영상을 양대 리그를 통합해 단 한 명에게만 줬기 때문에 수상이 더 어려웠다. 밀러가 단 1표를 제외하고는 투표단의 1위표를 싹쓸이했기 때문에 차라리 받아들이기 편했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 3위 마이크 무시나
무시나도 상복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총 18시즌을 활약하며 사이영상 투표 톱10에 9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1999년 2위에 오른 것이 가장 높은 순위였다. 당시 무시나는 18승7패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했다. 여느 시즌이었다면 다소 높은 평균자책점으로 여겨지지만, 당시는 그 유명한 '약물의 시대'였다. 타자들의 홈런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3.50의 평균자책점이 리그 3위에 해당할 정도였다.
무시나는 스탠퍼드 대학을 조기 졸업할 정도로 영리한 선수였고, 시즌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 모교 농구 코치를 할 만큼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현역 마지막 시즌에도 20승을 거둘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그러나 무시나는 제2의 인생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은퇴를 결정했다. 7번의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는데, 마지막 수상 시즌은 은퇴 직전인 2007년이었다.
데뷔 시즌을 제외하고는 17년 연속 두 자리 승리를 거둔 '꾸준함'의 상징이었기에 그의 은퇴를 아쉬워한 팬들이 많았다. 통산 성적은 270승153패 평균자책점 3.68.
◇ 2위 후안 마리셜
마리셜이 활약하던 1960년대는 투수들의 전성기였다. 그 가운데서도 마리셜은 몇 손가락에 꼽히는 리그 최고의 투수였다. 전성기였던 1963년부터 1969년까지 7년 동안 평균자책점은 2.34에 그쳤다. 한 시즌 269이닝 이상을 던진 게 6차례나 됐다. 그에게 불행은 샌디 쿠팩스와 같은 시대에 뛰었다는 점이다. 사이영상이 한 시즌에 단 한 명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에이스였던 마리셜은 1963년 25승으로 최다승을 올렸고, 투구 이닝(321⅓이닝)도 1위였다. 평균자책점은 2.41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이영상의 승자는 쿠팩스였다. 쿠팩스는 25승에 평균자책점 1.88 그리고 30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듬해 마리셜은 21승 평균자책점 2.48로 사이영상에 재도전했지만 실패했다. 20승에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한 딘 챈스가 받았다.
1965년에는 한층 분발했다. 마리셜은 22승에 평균자책점 2.13의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탈삼진 240개를 해냈고, 완봉만 10차례 기록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주인공은 쿠팩스였다. 1966년에도 쿠팩스(27승 평균자책점 1.73)의 기록에 또 밀렸다.
1967년 부상으로 주춤한 뒤 1968년 재도전에 나서 개인 한 시즌 최다인 26승을 따내고 완투만 30차례나 했다. 이번에는 세인트루이스 에이스 밥 깁슨이 역대 한 시즌 선발투수 최저 평균자책점인 1.12를 기록해 마리셜은 또 외면당했다. 1969년 마지막 도전에서 21승에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지만 신예 톰 시버(25승)에 밀려 또 좌절했다.
◇ 1위 버트 블라일레븐
역대 불운의 아이콘 가운데 최고는 단연 블라일레븐이다. 그는 총 22년간 통산 287승을 거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네 선수와는 다른 불운으로 1위에 올랐다.
블라일레븐은 1984년 19승에 평균자책점 2.87을 기록했다. 당시 분위기로는 충분히 수상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당시 불펜 투수들이 소외를 당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마무리 투수인 디트로이트의 윌리 에르난데스와 캔자스시티의 댄 퀸즈베리가 급부상했다. 결국 불펜 투수 두 명에게 밀리며 3위에 그쳤다.
이듬해 심기일전하며 17승에 평균자책점 3.16을 기록하며 재도전했지만 시즌 중 클리블랜드에서 미네소타로 트레이드된 점이 발목을 잡았다. 끝내 캔자스시티의 브렛 세이버헤이건에게 밀리고 말았다. 그 시즌 블라일레븐은 37번의 선발 등판 중 무려 24차례 완투를 했고, 5번의 완봉을 달성했다. 293⅔이닝을 던지고 탈삼진 206개를 잡아내는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