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기대주에서 불펜진 재건 중심으로 거듭났다. 묵묵히 궂은일을 해내고 있는 롯데 투수 박진형(23) 얘기다.
박진형은 2013년 신인 지명회의에서 2라운드에 롯데의 선택을 받은 유망주 출신이다. 지난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박세웅, 김원중과 함께 롯데 선발진을 이끌 투수로 기대를 모았다.
5월까지는 선발투수로 나섰다. 하지만 기복 있는 투구를 보였다. 한 차례 휴식을 줬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베테랑 송승준에게 자리를 내줬다. 당시엔 롯데의 선택에 의구심이 생겼다. 송승준이 예전의 기량을 되찾았는지 장담할 수 없었다. 선발진 세대교체가 절실한 상황에서 꾸준히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 됐다. 불펜 경험이 있는 선수다.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8월부터 본격적으로 필승조에 진입했다. 선발투수와 마무리 투수 손승락 사이를 잇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등판한 25경기에서 홀드 10개를 챙겼다. 평균자책점(3.12)도 준수하다. 선발로 나선 9경기에선 평균자책점 7.17을 기록했다.
선발투수로 쌓은 경험을 유용하게 활용한다. 힘으로 윽박지르는 유형이 아니다. 완급 조절 능력을 갖췄다. 직구보다 변화구 구사 비율이 더 높은 경기도 많다. 특히 주 무기 포크볼의 위력이 뛰어나다. 1⅔이닝을 소화하면서 투구 수 33개를 기록한 17일 SK전에선 포크볼만 19개를 던졌다. 8회 선두 타자 최항과 승부에선 원 볼에서 포크볼 7개를 연속으로 던져 삼진을 잡아냈다. 26이닝 동안 28삼진을 기록할 만큼 삼진 생산 능력도 갖췄다.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인 손승락과 재기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조정훈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팀 기여도는 두 투수에 버금간다. 박진형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면 조정훈, 배장호 등 다른 셋업맨의 부담이 커졌을 터다. 전반기 부진했던 투수가 다시 그 자리에 들어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면 롯데의 후반기 돌풍도 장담할 수 없었다.
연투가 쉽지 않은 현재 조정훈의 몸 상태를 감안하면 박진형의 역할이 더 크다. 박진형은 "전반기엔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앞으로도 마운드에 올라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만 생각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