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1981년부터 시작된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한국이 초대 대회 왕좌에 올랐고, 쿠바(11회)와 미국(9회)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우승 횟수(5회)를 자랑한다. 대회 초창기에는 쿠바가 우승을 휩쓸었지만, 한국도 미국과 함께 꾸준한 성적을 낸 국가 중 하나다. 22회였던 2006년 대회에선 김광현(SK)·양현종(KIA)·이용찬(두산) 등이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고, 2008년 대회에서도 성영훈(두산)·오지환(LG)·허경민(두산) 등이 활약하면서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하지만 25회부터 28회까지는 미국이 연속 우승컵을 가져갔다.
미국의 4연패로 막을 내린 28회 대회(캐나다 선더베이·9월 1~10일)에선 눈여겨볼 부분이 있었다. 첫째는 청소년 대회에서도 미국은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체격부터 큰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대부분 신장이 185cm 정도 되지만 미국은 그보다 10cm 이상 더 크다. 투수 쪽의 차이는 더 크다. 체격에서 오는 구위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2012년 열린 25회 대회에서 오타니 쇼헤이(현 니혼햄)를 출전시키고도 6위에 머문 경험이 있다. 그만큼 미국의 벽은 높다.
두 번째는 투구 수다.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곽빈(배명고·두산 입단 예정)의 투구 수 논란이었다. 슈퍼라운드 미국과 2차전에 선발 등판한 곽빈은 8⅓이닝 5피안타 9탈삼진 2실점(1자책점)을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공 144개를 던져 '투구 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회 우승을 차지한 미국에선 한 경기에 가장 많이 던진 투수의 투구 수가 117개였다. 미국은 투구 수를 의식한 듯 대회 내내 철저하게 투수를 로테이션으로 운영했다. 선발과 불펜을 분업화해 경기를 치렀다. 단순 비교를 해도 곽빈의 투구 수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도 상황은 한국과 비슷했다.
일본은 지금도 최고 고교 대회인 '고시엔(전국 고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 예선에서 한 투수가 150구 이상을 던지는 일이 종종 나온다. 일본 프로야구에선 선발투수가 117개에서 125개 정도를 책임지고 교체된다. 선발이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고 불펜으로 넘어가는 시스템이다. 완투했을 때 투구 수 140개를 기록하는 경우도 아직까지 나온다. 2008년 다르빗슈 유(현 LA 다저스)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소속팀 니혼햄은 투구 수를 120구로 제한했다. 120구 자체도 적지 않은 수치다. 지난 5월 28년 만에 3경기 연속 완봉이라는 기록을 세운 스가노 도모유키(요미우리)의 세 번째 경기 투구 수는 135개였다. 그만큼 일본에선 투구 수에 대한 논란 자체가 거의 없다.
이 상황과 비교했을 때 곽빈의 투구 수 144구는 왜 논란이 됐을까. 개인적으로 예외적인 상황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야구 정규 시즌과 달리 단기전으로 치러지는 국제 대회에선 다르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정규 시즌이라면 이 경기가 끝나도 다음 경기가 계속되는 장기 레이스라 투구 수를 많이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투구 개수 조정을 당연히 해 줘야 한다. 하지만 국제 대회에선 부득이하게 한 투수를 계속 던지게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 경기가 끝나면 다른 경기가 없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던질 수 있다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2년 전 샌프란시스코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투수 매디슨 범가너는 선발과 불펜을 모두 맡았다. 1차전(투구 수 106개)과 5차전(투구 수 117개) 선발투수로 나가 2승을 기록했고, 시리즈의 향방이 달린 7차전(투구 수 68개)에서 마무리 투수로 5이닝을 던져 세이브까지 올렸다. 5차전 등판 이후 7차전 등판까지 이틀간의 휴식밖에 없었다. 범가너가 다소 무리하게 등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월드시리즈가 끝난 뒤 더 이상 다른 경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어린 선수들의 투구 수를 조절하면서 어깨를 보호하는 건 당연하다. 투구 수가 많으면 바꿔 주는 것도 순리다. 어깨 부담을 덜어 주는 게 맞다. 곽빈의 투구 수가 적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하지만 국제 대회에선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투구 수를 조금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메이저리그는 162경기를 한다. 우리나라(144경기)나 일본(143경기)과 비교했을 때 20경기 가깝게 시즌을 더 치른다. 시즌을 길게 보기 때문에 투수들의 한계 투구 수도 비교적 낮다. 보통 100~110개 정도에서 투수 교체가 이뤄진다. 시즌 초반에는 80개 안팎에서 선발투수가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투수는 연습 과정에서도 다칠 수 있다. 개수 조정을 비교적 잘하는 미국에서도 부상 선수는 꾸준히 나온다. 하체 훈련을 좀 더 하면서 다른 방향에서 부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야구에선 130개를 던지면 휴식을 줘야 하는 강제 조항이 있다. 하지만 129개까지 던지게 해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분은 좀 더 손을 봐서 꼼꼼하게 다듬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내년부터는 아마 야구에서 확실하게 대비책을 마련한다는 좋은 소식을 최근 들었다. 투수를 보호하는 방법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