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라면 누구나 긴장을 한다. 포스트시즌과 같은 큰 무대에서는 더 그렇다. 관건은 그 긴장을 이겨내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느냐다.
포스트시즌에 처음 출전하는 선수 10명 가운데 9명은 경기 전 "부담 없이 즐기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주위 선배들께 '즐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가을잔치는 축제인 만큼 즐기는 마음으로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러나 정작 가을에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수들은 "갈수록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긴장이 많이 된다"고 말한다. 포스트시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후배들에게 '즐기라'고 주문하는 것일까. 어차피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막연히 상상만 하던 포스트시즌이 현실이 되는 순간, 가을 야구가 '축제'라는 생각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첫 투구 혹은 첫 타석을 앞두고 다리부터 떨려 온다.
17일 NC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처음 포스트시즌 선발 유격수로 출장한 두산 류지혁도 그랬다. 시즌 내내 탄탄한 수비로 주전 유격수 김재호의 부상 공백을 훌륭히 메웠던 선수다. 정작 중요한 무대에서 치명적인 송구 실책을 해 고개를 숙였다. 1차전에 앞서 당찬 포부를 밝혔던 그는 다음 날인 18일 잠실구장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포스트시즌 52경기에 출전한 베테랑 김재호는 그런 류지혁을 향해 "어깨 펴고 당당하게 걸어 다니라"고 했다. "네가 잘 하면 네가 칭찬 받는 것이고, 네가 못 하면 내가 욕을 먹는다"는 농담도 했다. 누구보다 류지혁의 마음을 잘 안다. 김재호는 "아무래도 큰 경기에선 평소에 잘 하던 것도 잘 안 될 때가 있다"며 "실수를 하고 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자꾸 시야가 좁아지고 자기 안에 갇힌다. 그러다 더 잘 안 풀리게 된다"고 했다.
바로 그럴 때 필요한 게 '즐기자'는 마음가짐이다. '승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김재호는 "그냥 '중요한 게임',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생각만 하면 된다.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더 몸이 굳는다"고 설명했다.
처음 출전하는 선수들에게만 어려운 게 아니다. 포스트시즌에는 날고 기던 주전 선수들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은퇴 전 마지막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있는 NC 이호준 정도는 돼야 "비로소 가을 야구가 편하고 즐겁게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두산은 최근 10년간 단 두 시즌(2011년, 2014년)을 제외하면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 가운데 한국시리즈만 네 번을 경험했다. 지난해와 2015년에는 한국시리즈를 2연패했다. 두산에 포스트시즌은 거의 '연례 행사'다. 그런데도 두산 선수들은 오히려 "우리라고 긴장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나친 여유를 경계하고 적당한 긴장감을 강조한다. 3년째 포스트시즌에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는 박건우는 "나는 아직도 '자신감'이 어떤 기분인지 의미를 잘 모르겠다. 오히려 갈수록 포스트시즌이 중요한 무대라고 여겨져 더 긴장이 많이 된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 이유로 '경험'은 포스트시즌에 꼭 필요한 무기다. 두산은 어깨 부상으로 100% 몸 상태가 아닌 김재호를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선수의 큰 경기 경험이 곧 팀의 자산이라서다. NC 유격수 손시헌은 두산 시절인 2005년부터 포스트시즌 59경기에 출전했다. 타석에서 적시타를 치지 못해도 손시헌의 존재와 경험이 NC 내야진을 단단하게 한다.
결국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필연적인 긴장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나온다. 경험은 그 압박감을 컨트롤하는 리모콘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