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주혁이 45세 짧은 생을 마치고 하늘로 떠났다. 고 김주혁은 지난 30일 오후 4시 30분께 서울 삼성동의 한 도로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구조 후 건국대학교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의식이 없었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오후 6시 30분께 사망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3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시신을 부검한 결과 부검의로부터 직접 사인이 '즉사 가능 수준의 두부 손상'이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된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은 가능성이 낮다고 전했다. 빈소는 31일 오후 3시부터 서울 현대아산병원에 마련되고 발인은 11월 2일 오전이다. 장지는 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 가족 납골묘다. 불과 한 달 전 tvN '아르곤' 공식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흘 전 제1회 서울어워즈에서 수상하며 수상소감을 건넸던 그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1998년 SBS 8기 공채로 데뷔해 올해로 20년 차를 맞이한 베테랑 배우 김주혁의 인생을 되짚어본다.
한국의 '휴 그랜트'고 김주혁의 별명은 한국의 휴그랜트. 영화 '홍반장'에서 보여줬던 이미지가 그에게 찰싹 달라 붙었기 때문이다. 찌질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는 김주혁 만이 소화할 수 있는 감성이었다. 이후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2005)'로 정점을 찍었다. 300만명을 동원하며 '싱글즈'부터 시작한 로맨스 영화의 흥행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휴 그랜트라는 수식어를 달가워 하지 않았다. 나중에 KBS 2TV '1박2일'에서 휴 그랜트라는 수식어에 대해 "정말 원치 않는 별명"이라고 말했다. 이후 인터뷰에서도 "내게 어울리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이 얼굴로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용할 뿐"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인 적도 있다.
사극까지 섭렵고 김주혁은 영화에 주력하다가 2012년 브라운관으로 복귀했다. 복귀 후 사극을 연달아 두 편을 찍으며 무게감을 키웠다.
가장 먼저 아버지 고 김무생의 히트작 '용의 눈물'을 쓴 이환경 작가의 MBC '무신'에 출연했다. 이미지 탈피를 위해 근육도 키우며 노비 출신 고려 무신 최고 권력자 김준에 빙의했다. '무신'이 끝난 뒤 6개월 만에 MBC '구암 허준'에서 허준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아버지 고 김무생도 1975년 MBC '집념'에서 허준으로 분했다. 아버지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임을 증명했다.
예능에선 '구탱이 형'인생에 변환점이 생겼다. 예능 '1박2일'이다. '1박2일' 시즌3 고정 멤버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구탱이 형'으로 활약했다. '구탱이 형'이라는 별명은 게임에서 비롯됐다. 사자성어를 맞추는 게임에서 제작진은 '토사'를 외쳤고, 고 김주혁은 '구탱'을 외친 것. 그때부터 '구탱이 형'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친숙하면서 허당기 가득한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1박2일'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1박2일' 멤버를 '우리'라고 칭했고, 틈만나면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하차할 때도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시기를 늦췄던 그다. 고 김주혁은 '1박2일'은 배우 연기에도 도움을 줬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