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는 이미 영하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30·크리스탈 팰리스)이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2017~2018시즌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가 한창이지만 이청용의 모습을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벌써 22라운드까지 치른 리그 경기는 물론, 벤치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FA컵 경기서도 그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당장 9일(한국시간) 영국 브라이튼의 팔머스타디움에서 열린 FA컵 64강(3라운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과 원정경기에서도 이청용은 끝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날 90분 동안 로이 호지슨(71) 감독이 꺼내 든 교체 카드는 단 두 장이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크리스탈 팰리스에는 한 장의 교체 카드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1-1 동점이었다가 후반 42분에 상대에게 골을 내주며 1-2로 끌려가는 상황을 맞았을 때도 호지슨 감독은 끝내 이청용을 외면했다. 최근 이청용의 팀 내 입지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청용은 지난해 10월 25일에 열린 EFL컵(카라바오컵) 브리스톨 시티와 경기에 선발 출전한 뒤 한동안 벤치만 지켰다.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열린 리그 21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 교체로 나서긴 했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투입돼 활약할 시간이 없었다. 올 시즌 이청용의 리그 출전은 단 3경기, 컵대회를 포함해도 6경기가 전부다.
이청용에게 힘겨운 주전 경쟁은 매 시즌 반복돼 온 과제지만 이번 겨울은 유독 혹독하다. 소속팀 크리스탈 팰리스가 부진을 반복하는 동안에는 감독이 교체될 때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었지만, 호지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부터 '희망고문'의 여지마저 사라졌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호지슨 감독 부임 이후 눈에 띄게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최근 리그 성적은 10경기 4승5무1패로 준수하다. 문제는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승세로 이끌고 있는 호지슨 감독의 선택지에 이청용이 없다는 점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리고만 있는 상황에서 당장 2018 러시아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월드컵을 준비하기 위해선 늦어도 1월 이적 시장이 마감되기 전에 팀을 옮겨야 한다. 직접 유럽으로 떠나 이청용을 만나고 돌아온 신태용(48) 축구대표팀 감독도 그에게 비슷한 조언을 했다. 이청용 역시 월드컵에 가기 위해 팀을 옮길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행선지다. 이청용은 유럽에 잔류해 도전을 이어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랜 주전 경쟁 때문에 그라운드 위에서 실력을 보여 줄 기회가 많지 않았던 터라 유럽 내 이적이 성사될지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 경우 K리그 리턴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의 복귀를 바라는 '친정팀' FC 서울은 물론이고 이청용에게 관심을 갖는 팀은 여럿 있다. 하지만 월드컵을 위해 K리그에 복귀할 경우 사실상 유럽 생활을 마감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