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한국 테니스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 신화를 쓴 정현(58위)은 라켓 대신 마이크를 들어도 거침없다.
24일 호주오픈 남자 단식 8강전 테니스 샌드그렌(97위·미국)을 3-0으로 완파한 뒤 코트 인터뷰에서 여유 넘치는 인터뷰 실력을 과시했다. 정현은 이날 승리 뒤 큰 세리머니 대신 살짝 미소만 지었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질문에 정현은 "사실 40-0(포티러브)이 됐을 때 무슨 세리머니를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듀스에 이어 브레이크포인트까지 몰렸다. 일단 공을 상대 코트에 집어넣고 달리기에 바빴다. 결국, 아무런 세리머니를 못 했다"며 웃었다.
재치 있는 농담 뒤엔 상대에 대한 존중도 보였다. 샌드그렌은 8강 진출자 가운데 랭킹이 가장 낮았지만 정현은 방심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정현은 "조코비치와 경기에서 겨우 이겼다. 오늘 경기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한국팬들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정현은 "현지에서 응원해 주신 한국분들께 감사드린다. 한국에서 응원해 주신 팬과 친구들도 감사하다. 아직 안 끝난 것을 안다. 금요일에 뵙겠다"며 26일 준결승전을 기약했다.
정현의 언변은 16강전이 끝난 뒤부터 화제가 됐다.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를 이긴 그는 3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3-0까지 달아난 뒤 동점을 허용했을 때 심정을 묻는 질문에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섰기 때문에 3세트를 내줘도 4~5세트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나는 조코비치보다 어리기 때문에 2시간 더 경기할 준비가 돼 있었다"며 웃었다. 관중들은 패기 넘치는 신예의 답변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코트 끝에 날카로운 앵글샷이 돋보였다는 물음에는 "어렸을 때 우상인 조코비치의 앵글샷을 따라 하려고 한 덕분"이라며 진지하면서도 기분 좋은 멘트를 건넸다.
소년처럼 장난기 많은 정현이지만, 스승에게 감사의 한마디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현은 조코비치전 인터뷰를 끝내고 들어가면서 중계 카메라 렌즈에 사인펜으로 '보고 있나?'라는 말을 적었다. 이 말의 의미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정현은 "전 삼성증권 (김일순) 감독님과 약속했다. (보고 있나) 위에는 캡틴이라고 썼다"며 "삼성증권이 해체되고 감독님이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이렇게나마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