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평창겨울올림픽이 폐막했다. 개막 전에 평창올림픽은 ‘불참올림픽’으로 소문나 있었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미국의 강경 대응으로 대한민국은 올림픽 직전까지 위기설에 시달려야 했다. 러시아는 국가 주도의 도핑 혐의로 선수들이 대거 불참했고, 개·폐회식에 참석이 예정됐던 국가 수반급 인사들도 속속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일본 아베 총리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남북한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안이 타결되자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북한 예술단과 응원단, 선수단, 정치인들이 방남하면서 평창올림픽은 뜻하지 않은 놀라운 손님들이 잇달아 찾아왔다. 북한의 김여정, 미국의 이방카, 안 온다고 했던 일본의 아베 총리까지. 평창겨울올림픽은 첨예한 이념 대립은 잠시 내려 두고 전 세계 청년들이 한마음 한뜻이 돼 스포츠맨 정신을 나누는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이 됐다.
이번 평창올림픽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특히 스켈레톤 윤성빈의 짜릿한 금메달, ‘영미’로 알려진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의 은메달은 국민이 울고 웃게 해 줬다. 여자 컬링팀의 경기가 있는 날마다 TV 앞으로 모여든 국민들은 ‘영미!’를 외치며 응원했다.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은 매 경기마다 명승부를 보여 줬다. 의성여중·고 출신으로 똘똘 뭉친 팀워크가 장기인 컬링팀은 자존심이 세고, 끈기가 강하다고 알려진 의성 김씨 집성촌 출신이다. 문득 40여 년 전에 우연히 의성을 지났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고운사에 가는 길이었다. 길을 잘 몰라서 마침 지나가던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점잖게 생기신 분이었다. “고운사에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합니까?” 그러자 할아버지는 “젊은 양반은 걸음이 빨라서 두세 시간만 쉼 없이 쭉 걸어가면 될 겁니다”라고 했다. 내 걸음으로 두세 시간이면 상당한 거리였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알고 보니 그는 그 근방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다. 손기정 선수가 졸업한 양정고등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고운사는 왜 가십니까?”라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그냥 다녀가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의성은 참 척박한 땅이죠. 고운사에 가는 길이 길쭉길쭉한 바위가 많아서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침 가을이라 길가 과수원에 빨갛게 잘 익은 홍옥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오래 걸어 목이 마른 참에 홍옥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 땅에 떨어진 홍옥이 있어 얼른 먹었는데 지금도 그 향긋한 맛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꿀맛 같은 사과가 열리다니. 그날 이후 내게 의성 땅은 척박하나 무척 맛있는 홍옥이 열리는 고장으로 기억에 남았다.
여자 컬링팀은 기적을 만들었다. 컬링 불모지인 한국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게 된 기적은 모두 그들 덕분이다. 어쩌면 한국이 평창올림픽을 개최한 과정과 결과 전체가 기적일지도 모른다. 서울과 떨어진 강원도 지역에서 유치한 올림픽이었기에 발생한 교통 문제와 편의 시설
·난방 시설·휴게 시설·화장실 부족 문제 등으로 올림픽을 직관했던 관람객들은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강원도는 6·25 전쟁 당시에 수많은 격전을 벌이던 전쟁터였다. 한국군은 물론이고 북한, 중공, 미군, 전 세계에서 온 유엔군들도 숱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데올로기가 만든 한과 슬픔, 증오가 서려 있던 땅에서 평창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평창올림픽은 남북의 갈등이 해빙되는 대동의 한 마당이 됐다. 부족한 예산과 환경에서 최상의 올림픽을 만들어 낸 평창올림픽 관계자들,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성숙한 국민 의식을 보여 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