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를 모았던 오타니 쇼헤이(24·LA 에인절스)가 미국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 고전 중이다. 2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이 무려 27.00(2⅔이닝 9피안타 9실점)이다. 투수와 타자를 모두 할 수 있는 이른바 '이도류'로 관심을 모았지만, 타석에서도 타율이 고작 0.107(28타수 3안타)에 불과하다. 현재 상황에선 에인절스 구단이 오타니의 미래를 한 박자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 상대해본 오타니는 강했다. 2015년 프리미어12에선 한국 대표팀을 압도했다. 당시 대표팀의 타격이 크게 떨어지는 전력이 아니었지만, 개막전과 4강전에 모두 선발투수로 출전해 13이닝 3피안타 2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내셔널리그가 아닌 아메리칸리그를 선택했기 때문에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것엔 큰 문제가 없다. 에인절스 구단도 이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내가 본 오타니는 타격보단 투수 쪽에서 성공 확률이 더 높아보였다.
시범경기 부진은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주특기인 포크볼을 잘 안보여주는 것 같았다. 많이 맞아 나가는 공에 대한 구단의 분석도 있겠지만, 일부러 빠른 공 위주로 레퍼토리를 짰을 수 있다. 지금 실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실력을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투수의 가능성이 높다면 무리하게 투타를 겸하는 것보다 원만한 합의를 이뤄 '투수'로만 뛰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일본 최고의 홈런타자 왕정치도 비슷했다. 왕정치는 와세다실업고등학교 시절엔 투수를 하면서 3,4번 타자까지 소화했다. 요미우리에 입단한 1959년엔 2월 스프링캠프에서 불펜에수 투구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타격에 집중하기 위해 투수를 포기했다. 이후 홈런 869개를 때려낸 거포로 리그를 쥐락펴락했다. 요미우리 구단의 빠른 선택이 '타자' 왕정치의 성공을 이끈 요인 중 하나였다. 스즈키 이치로도 고시엔(전국 고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을 투수로 뛰기도 했지만 프로 입단 후 타자에 전념했다.
국내 구단에선 김성한이 대표적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까지 투수 겸 내야수로 두각을 나타낸 김성한은 신인 시절인 1982년 해태 소속으로 타율 0.305(318타수 97안타), 13홈런, 69타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투수로도 26경기 등판해 10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88로 활약했다. 하지만 점차 등판 횟수를 줄여갔고, 1986년을 끝으로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타석에 에너지를 쏟으면서 통산 1338경기를 소화했다. 성적도 타율 0.286, 207홈런, 781타점으로 준수하다. 투수와 타자를 겸했으면 쉽게 달성하기 힘든 성적일 수 있다. 결과론적이지만 타자에 집중한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승엽도 타자에 전념한 케이스다. 1995년 고졸 신인으로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은 당시 투수였다. 경북고 시절 투수와 타자를 겸했고,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 타자로 돌아서서 한국 최고의 홈런왕이 됐다. 최근엔 강백호가 이 사안으로 눈길을 끌었다. 강백호는 세계청소년대회에서 투수를 맡았을 정도로 레벨이 되는 유망주다. 빠른 공이 시속 140km 후반에 찍힌다.
하지만 타격에서 워낙 두각을 나타내 이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kt에서 빠르게 결단을 내린 부분은 잘한 거다. 곽빈은 반대 케이스다. 두산에선 투수로 육성에 들어갔지만 배명고 시절엔 중심타자까지 맡았던 자원이다. 타격 쪽에선 그동안 어필이 크게 되지 않았지만, 재능은 있다. 그러나 두산은 투수로 가면 성공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결단을 내려 선수가 혼란을 겪지 않게 한 게 현명했다.
오타니도 비슷한 상황이다. 선수 본인은 둘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클 것이다. 일본에선 충분히 두 가지 성공 가능성을 모두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에인절스가 빠르게 결론을 내려 투수 혹은 타자, 하나에 전념을 시킬 필요도 분명하다. 일본에서 경험한 투수와 메이저리그 투수는 양과 질에서 큰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