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자동차 사고가 잇따르면서 책임 소재 공방이 뜨겁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떻게 피해를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다. 이에 독일 일본 등 자동차 선진국들은 관련 법안 마련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2020년 운전자 탑승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외친 우리나라는 제조사에 안전 운행을 당부할 뿐 아직 이렇다 할 법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시급히 안전 규정과 보험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명 사고 낸 자율주행차… 법안 마련에 분주한 선진국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폭발한 테슬라의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델X'는 사고를 일으키기 직전에 자율주행 모드가 작동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테슬라는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지난달 23일 미 캘리포니아주 101번 고속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폭발한 모델X의 주행 기록을 살펴본 결과, 충돌 직전에 자율주행 모드가 켜져 있었다고 밝혔다. 사고 차량은 중앙분리대와 충돌한 직후 다른 차량 2대와 연쇄 충돌한 뒤 폭발했다. 웨이 황으로 알려진 38세 운전자는 사고로 사망했다.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사망 사고를 일으킨 건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다. 2016년 테슬라 모델S 차량이 미 플로리다에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트레일러 차량과 충돌해 운전자가 사망했다.
앞서 지난달 18일 미 애리조나주 템피에서는 우버가 시험 운전 중이던 볼보 XC90 자율주행차가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를 치어 사망케 한 사고가 발생했다. 우버의 자율주행차는 늦은 밤에 4차선 도로에서 보행자를 감지하지 못했다.
자율주행차 관련 사망 사고가 잇따르면서 업계에서는 자율주행차의 안전에 대한 논란과 함께 법적 책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아직까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 이렇다 할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각국은 관련 법 제도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 30일 '자율주행 관련 제도 정비 개요(개정안 초안)'를 마련했다. 개정안 초안은 운전자가 있는 상태에서 조건부로 자율주행하는 '레벨3' 단계까지 자율주행차 사고에 대해 원칙적으로 차량 운전자가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독일은 자율주행 수준과 관계없이 사고 책임 대부분을 차량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지도록 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5월 법 개정으로 자율주행차에 블랙박스 탑재를 의무화했다. 사고 발생 시 블랙박스 기록을 분석해 자율주행시스템 오류가 발견되면 제조사가 책임진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현재 21개 주가 자율주행차 관련 법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사고에 따라 제조사와 운전자 과실 비율을 다르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손 놓고 있는 한국…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나
한국은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가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의 임시 운행 허가를 내주고 있지만 국회와 사법부에서는 관련 법안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자율주행차 운전 수칙과 사고 처리 기준을 명시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지만 아직 소관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이 최종 통과돼도 시행령까지 만들어지려면 또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은 보통 6개월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당장 미국처럼 국내에서 자율주행차 관련 사고가 발생해도 법적 사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율주행차 관련 법 제도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자율주행차 관련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애매한 형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자율주행차를 시험 운행 중인 한 업체 관계자 역시 "아직 이렇다 할 법안이 없다 보니 사고가 났을 경우 책임 공방이 벌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며 "다만 아직까지 국내에서 자율주행차 관련 사고가 없는 만큼, 책임 부분이 어떻게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하루빨리 법안 마련에 나서야 할 정부는 국내에서 시험 운행 중인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27일 "우버 차량의 사고가 발생한 미국 애리조나주는 실차 검증 없이 서류만으로 자율주행 임시 운행 허가를 승인한 반면, 우리나라는 실제 검증 이후 허가한다"며 "지금까지 허가받은 자율주행차는 총 44대로, 아직까지 교통사고에 개입된 적은 없다"는 참고 자료를 내놨다.
그러면서 지난달 30일 국내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 중인 18개 업체·대학 등을 불러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국내에서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일으킨 적은 없지만 사고가 일어나면 현행법으론 책임을 따지기에 한계가 있다"며 "하루빨리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에 대한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적 제도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입법부와 행정부는 물론이고 기업과 금융권(보험업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법과 제도에 대해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