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치러진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원주 DB와 서울 SK의 4차전 경기는 홈팀 SK의 87-85 승리로 끝났다. 시리즈 전적 2승2패 동률이 된 두 팀은 승부를 최소 6차전까지 가져가게 됐다. 어쩌면 최종전 7차전까지 가는 혈투가 펼쳐질 수도 있다. 챔피언을 가리는 경기답게 치열한 마무리다.
그러나 시리즈를 바라보는 농구팬들의 시선은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시리즈 초반, 아니 어쩌면 시즌 내내 누적돼 온 심판의 판정 문제가 4차전 경기에서 크게 터졌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렇다. 이날 경기 4쿼터 종료 17초를 남긴 시점에서 SK가 DB에 82-80으로 2점 앞서있었다. DB의 김태홍(30)이 테리코 화이트(28·SK)에게 반칙을 범해 자유투 2개를 내주면서 승부의 추가 SK 쪽으로 기울었다. 이 때 이상범(49) DB 감독이 화이트의 트래블링 반칙을 주장했고 심판은 이 감독에게 테크니컬 반칙 경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켜보던 다른 심판이 달려와 그를 만류했다. 이 감독이 이미 테크니컬 반칙 경고를 하나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경고 하나를 더 받을 경우 자동으로 테크니컬 반칙이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심판은 테크니컬 반칙 경고를 취소하려 했다. 그러나 판정을 취소하려는 심판의 손짓을 보고 이번엔 SK 벤치가 항의에 나섰다. 결국 이 심판은 원래대로 이 감독에게 테크니컬 반칙 경고를 줬고, 그 결과 SK가 자유투 3개와 공격권을 가져가게 됐다.
이미 2점 앞서있었던 데다가 자유투 2개를 확보한 상황인 만큼, 이 테크니컬 반칙이 승부를 뒤집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양 팀 선수단은 물론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까지 모두 이 황당한 촌극에 극심한 실망감을 느꼈다. 설령 이 감독이 항의하는 장면이 테크니컬 반칙 경고를 받을 만했다 치더라도, 심판이 자신이 이미 준 경고를 잊고 있었다는 점은 명백한 실책이다. 다른 심판이 이를 말리는 장면 역시 불필요했다. 한 시즌 최고의 팀을 가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나온 미숙한 판정 논란에 이 감독은 "스코어는 졌어도 농구는 이겼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억울한 심정을 대변했다.
이성훈 KBL 사무총장은 이번 판정 논란에 대해 "남은 시간이 17초밖에 되지 않는 데다 이 감독이 테크니컬 반칙 경고가 이미 하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 경고를 부과한 것은 경기 운용의 묘가 부족했던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치 심판이 승부를 결정짓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져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남은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판정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KBL은 이번 판정이 여론의 질타를 받자 16일 재정위원회를 개최해 해당 심판에게 잔여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100만원을 부과했다. 재정위원회는 "테크니컬 반칙 경고는 심판의 재량에 따라 부과가 가능하지만 테크니컬 반칙 경고 누적 여부를 인지하지 못한 점과 당시 경기 진행 상 테크니컬 반칙 경고 부과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 부족했다"며 "남아있는 경기의 중요성과 심판부의 집중력 제고를 위해 제재하기로 한다"고 징계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미 KBL의 말을 믿는 농구팬들은 없다. 매 시즌 반복된 판정 논란에 지친 농구팬들은 심판에 대해 신뢰가 아닌 불신만을 보내고 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KBL은 정규리그 때부터 일관적이지 않은 판정 기준, ’홈콜’(홈팀에 유리한 판정) 논란으로 꾸준히 몸살을 앓아왔다. 이처럼 누적된 판정 문제가 챔피언결정전이라고 안 터질 리가 없었다. 수많은 농구팬들이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실제로 연이은 오심과 홈콜 논란이 쏟아졌다. 1차전 당시 공격자 보호구역에서 수비하던 최준용(24·SK)이 공격자 반칙을 지적받아 5반칙 퇴장당한 장면이나 3차전에서 지적받은 SK를 향한 홈콜 의혹이 대표적이다. 4차전 판정 논란은 지금까지 쌓여온 심판에 대한 불만을 확실하게 폭발시키는 기폭제였을 뿐이다. 이처럼 매번 반복되는 심판의 판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개혁이 필수적이다. 현행 KBL 심판 운영 제도부터 심판 개인의 자질까지 확실하게 개선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가 반복될 뿐이다. 각 팀 주장을 통해야만 심판에게 항의할 수 있는 권위적인 규칙을 만들어놓고도 정작 판정 논란은 그칠 줄 모르니,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잘못을 범한 선수나 감독들이 제재금을 내고 징계를 받듯이 심판들도 오심에 책임져야한다. 심판들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얘기다. 농구와 마찬가지로 심판의 영향력이 큰 다른 종목의 한 선수는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심판을 평가하는 것은 어떠냐"고 얘기한 적도 있다. 팬들은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도 심판의 판정이 신뢰를 잃는다면 권위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KBL 관계자들은 "심판이 주인공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손을 모아 기원했다. 당연한 얘기다. 봄농구 코트의 주인공은 양 팀의 사령탑과 벤치, 직접 뛰는 선수들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적어도 4차전까진 그 바람이 이뤄지지 않았다. 챔피언이 결정될 때까지 봄 농구 주인공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심판들의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