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판독 시스템(VAR·Video Assistant Refree)'이야말로 이번 월드컵의 '라이징 스타'다."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잭 버나드는 20일(한국시간) 기고문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VAR을 스타 선수에 빗댔다. 세계적인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와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보다 'VAR'이란 말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훨씬 더 자주 오르내리는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번 대회를 위해 VAR 전담 심판팀 13명을 별도로 꾸리고, 경기마다 VAR 심판 4명을 배정하고 있다. 이들은 경기장(12골)에 설치된 37대의 카메라를 통해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한다. 페널티킥·레드카드·득점 등 결정적인 상황에서 오심 여부가 확인되면서 VAR이 승부의 결정적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VAR의 힘'을 빌려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승리를 챙겼다. '우승 후보' 프랑스는 지난 16일 열린 조별리그 호주전에서 고전하며 0-0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 들어 VAR이 분위기 반전의 기회를 도와줬다. 후반 9분 앙투안 그리즈만이 호주 수비수 조시 리즈던의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하지만 20초 뒤, 주심은 경기를 중단했다. VAR 전담 심판진으로부터 사인을 받은 그는 경기장 밖에 설치된 모니터를 확인한 뒤 판정을 뒤집고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월드컵 사상 첫 VAR 판정이었다. 그리즈만은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프랑스는 이 경기를 2-1로 이겼다.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킨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VAR은 어느 시점에서든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심이 그라운드에서 직접 VAR을 결정할 수도 있고, VAR 전담 심판의 확인 필요 권고에 따라 판독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한국도 지난 18일 스웨덴과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VAR 판정으로 상대에게 페널티킥을 내주며 0-1로 졌다. 후반 22분 김민우가 페널티박스에서 상대 공격수 빅토르 클라에손에게 태클할 때만 해도 주심은 반칙 휘슬을 불지 않았다. 하지만 18초 뒤에 주심은 경기를 중단했고, 영상 확인을 통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VAR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선 레드카드를 찾아보기 힘들다. 총 17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주심이 레드카드를 꺼내 든 경우는 19일 일본-콜롬비아전(카를로스 산체스)에서 단 한 차례뿐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10명이 레드카드를 받아 그라운드를 떠났고, 2010 남아공월드컵에선 17명이 퇴장으로 경기를 일찍 끝냈다. 2006 독일월드컵에선 주심이 모두 28명(이상 경고 누적 포함)을 퇴장시켰다. FIFA는 VAR 도입 의도가 들어맞았다며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FIFA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VAR로 반칙 행위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선수들이 알기에 퇴장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dba통신에 따르면 FIFA 대변인은 "(VAR은) 매우 만족스러운 결정"이라며 "기대한 대로 됐다"고 17일 말했다.
레드카드는 줄었지만 페널티킥은 늘었다. 조별리그 17경기 기준으로 모두 10개의 페널티킥이 나왔다. 이 추세대로라면 단일 대회 최다 페널티킥 기록을 새로 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역대 월드컵 단일 대회 최다 페널티킥 기록은 18개(1990·1998·2002년)다.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는 "VAR의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페널티킥은 늘었지만, 그 어떤 대회보다 오프사이드 반칙은 줄었다"면서 "'VAR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는 '최첨단 장비의 경연장'으로도 불린다. VAR 외에도 경기장 곳곳에 과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헤드셋 도입이 대표적이다. 각국 코칭스태프가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경기를 지휘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지난 3월 축구 규칙을 관장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의 의결로 벤치에서 전자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감독은 벤치가 아닌 장외에 있는 코칭스태프와 헤드셋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하면서 작전 지시를 내린다. 경기를 폭넓게 볼 수 있는 기자석에 스태프 3명이 앉아 경기 관련 데이터와 선수의 몸 상태를 벤치에 있는 감독과 다른 스태프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전자칩이 내장된 공인구가 사용되는 것도 색다르다. 대회 공인구인 '텔스타 18' 안에는 근거리무선통신(NFC) 칩이 장착돼 있다. 월드컵 공인구로는 최초다. NFC 리더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을 공인구에 갖다 대면 무게, 재질 등 공에 대한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이용자 간 콘텐트 공유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