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감독(46)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이 됐다. 덱스터 스튜디오를 설립해 할리우드 못지않은 VFX 기술을 보급하면서 '미스터 고'로 과감한 시도를 감행하더니 '신과함께'라는 전무후무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신과함께-죄와 벌'을 아시아 전역에 흥행시키며 내수 시장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던 한국 영화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그는, 마블 히어로의 창시자 스탠 리의 손을 잡고 한국 감독 최초로 할리우드 히어로물 '프로디걸' 연출에 도전한다. 한국형 SF 대작 '더 문' 역시 준비중. 미지의 우주를 탐험하듯 새로운 시도와 과감한 결정, 우려를 날리는 결과물은 곧 충무로의 새 역사다.
김용화 감독은 한국에서 가장 흥행작을 많이 만들어낸 연출자 중 한명이다. 데뷔작인 '오! 브라더스'(2003)를 시작으로 '미녀는 괴로워'(2006)·'국가대표'(2009)를 통해 스타감독 반열에 오른 후, 144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국내 개봉작 흥행 2위에 오른 '신과함께-죄와 벌'로 상업영화 거장이 됐다. 그의 작품 한 편 정도는 누구다 다 봤을 법한 화려한 필모그래피다.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는 아니다. 감독이자, 제작자이자, 상장기업 덱스터의 대표인 그는 지난 7년간 휴가 한 번 가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촬영이 없을 때면 매일 오전 8시 집을 나서 꼬박 출근하는 직장인의 삶을 살았고, 메가폰을 잡으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두살배기 딸 얼굴 한 번 보지 못할 정도로 밤을 새며 일했다.
'사람 보는 눈' '사람 다루는 솜씨'도 날로 성장하고 있다. 경험에서 체득한 배움이다. 흔한 꼰대 마인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수평함과 솔직함이 김용화 감독의 무기다. 400명에 가까운 직원을 대표하고 있지만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이는 직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개개인의 성향, 생각, 결정을 최대한 듣고 존중하려는 노력.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김 감독의 철학은 덱스터 스튜디오의 대표이사 '김용화의 철학'이기도 하다.
취중토크를 위해 만난 김용화 감독은 '신과함께-죄와 벌'로 수상한 제54회 백상예술대상 감독상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수상자보다도 순수하게 기쁨을 표현했다. 시상식 참석 덕분에 오랜만에 재회한 배우 설경구와 새벽내내 술잔을 기울인 이야기, 집 앞으로 불쑥 찾아와 "술 마시자" 조른 절친 최동훈 감독과의 일화, 어린 아내를 만난 남편이 해야할 의무까지 털어놓으며 예상치 못한 '인간미(美)'를 쏟아냈다.
최근 주량은 맥주 5잔이지만 7잔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 빠져든 수다 삼매경이다. 말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듣는 귀'가 더 활짝 열려 있는 김용화 감독은 어느 새 털어놓은 기자들의 고충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조언을 건넸다. 겸손함은 덤이다. 최고의 흥행 감독 그리고 덱스터의 대표가 아닌 평범한 '인간 김용화'는 존경할만한 '인생 선배'이자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꾼'이었다.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은 어떻게 되나요. "뻔한 답일 수 있는데 20대·30대·40대가 다 달라요. 지금은 맥주 5잔 정도 마시면 취하죠. 어렸을 땐 과음을 하면 몸이 젊은데도 다음 날 숙취가 심했거든요. 하루 종일 너무 힘들었는데 웃기게도 지금은 그건 덜해요. 단순히 주량이 줄어서가 아니라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리 많이 마셔도 회사는 나가야 하니까.(웃음)"
-촬영을 하지 않을 땐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나요. "영화 찍을 때야 촬영만 잘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을 땐 보통 오전 8시에는 회사로 출발하죠.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술은 자주 마시나요. "요즘엔 사업적인 미팅 자리가 많아요. 영화인들이나 배우들과 사적으로는 거의 못 마셨죠. 최근 (주)지훈이와 술 안 마시겠다고 서로 약속도 했고요. 건강하게 오래 살기로 했거든요. 특히 지훈이 같은 나이에 여러가지 좋은 일들이 생기면 잠깐 스스로를 놓을 수 있잖아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고 했죠."
-주사는 없나요. "말이 없어져요. 그리고 바로 일어나서 집에 가죠.(웃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고 어떤 중요한 자리라 해도 말이 없어지면 5분 안에 가요. 인사할 정도면 그나마 정신이 있는 거예요. 술에 취하면 자제력이 떨어지고 실언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너무 싫거든요.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거죠."
-주종은 뭔가요. "솔직히 술은 다 잘 마시고 좋아해요. 맥주·와인·위스키·소주·막걸리 전부 다. 워낙 술을 좋아했는데 딸 아이가 너무 어리고 2세 계획도 있거든요.(웃음) 운동 해야죠. '신과함께-인과 연'을 잘 개봉 시키고 다시 건전한 정상인으로 돌아가려고요. 결혼식 바로 직전의 모습이 목표네요."
-근데 감독님은 늘 관리가 돼 있는 느낌이에요. "에이~ 전혀요.(웃음) 다만 나이 어린 친구와 결혼하니까 제가 스스로 신경쓰는 것도 있지만 아내가 봐주고 챙겨주는 영향력이 큰 것 같아요. 요즘엔 예전 옷 안 맞는다고 한 소리씩 듣곤 해요. 하하."
-스타일리시한 감독으로 유명하죠. 오늘 사진 촬영도 어떤 배우들보다 자연스러웠고요. "이런 말 해도 되나? 저 광고도 한 10개 땄어요. 자동차 광고도 있었으니까. 근데 일절 안 했죠. 사실 전 제가 드러나는걸 별로 안 좋아해요. CF·방송 뿐만이 아니라 인터뷰도 되게 안 하는 편이거든요. 예전에도 최대한 줄여서 했고요. 감독은 결국 작품으로 말해야지'라는 생각이 강해요. '인간 김용화' 파면 또 재미 없거든. 하하."
-'백상 감독상' 축하 드립니다. 백상 트로피가 낯설지는 않죠. "감독상 트로피는 처음 받아요. 이번에 백상까지 받으면서 주요 시상식 감독상은 거의 다 받은 것 같아요. 그랜드슬램? 하하. '국가대표' 때 대부분 감독상을 받았는데 백상에서는 작품상을 받았거든요. 참 운도 좋고 재주도 좋네요.(웃음)"
-수상은 예상 했나요. "전혀요. 뭐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웃음) 다른 것보다 백상은 '진짜 시상식' 느낌이 나서 좋았어요. 직업병이라 무대는 어떤지, 카메라는 몇 대가 있는지 살펴보게 되는데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고생했겠다. 정말 신경 많이 썼구나' 싶었죠. 초대받아 존중받는 느낌도 들었고요. 사실 시상식에 갈 때 마음은 반반이잖아요.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걸 생각하는 순간도 스트레스라 가급적이면 수상 여부를 떠나 '오랜만에 동료·지인들 보는 자리다'라는 생각만 하려고 해요."
-인사는 많이 나눴나요. "설경구 선배님을 뵐 수 있어 좋았어요. 계속 '보자, 보자' 꾸준히 연락은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았거든요. 그날을 인연으로 아예 약속을 잡았죠. 얼마 전 만나 밤 새도록 술을 진탕 마셨네요. 선배님과도 꼭 한번 같이 작품해야 하는데 말이죠."
-호명된 순간 마음은 어땠나요. "관객수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800만 명이 넘은 작품은 상을 주는게 애매해요. 관객들이 많이 찾아준 것 만으로도 감독과 제작사, 투자사는 수혜를 입은 거니까요. 실제로 스펙트럼이 넓은 작품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흡수하기 때문에 역으로 특정 계층에서 로열티를 발휘하기는 쉽지 않죠. 그걸 알기 때문에 첫 영화를 만들 때부터 수상을 기대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모든 감독님들의 마음도 같겠지만요."
-'국가대표'로 상을 휩쓸었을 땐 남달랐겠어요. "삶의 목표, 세계관이 크게 흔들릴 정도었죠. 정서적으로 많은 것을 바꿔놓은 일이었어요. 뭐 그때나 지금이나 시상식은 노미네이트만 돼도 굉장히 기분 좋아요. 그렇잖아요. 1년에 영화가 100편 이상 나오는데 후보로 뽑힌게 어디에요. 받아서 싫지 않고 너무 행복하지만 그 앞엔 '많은 관객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있어요."
-이번 감독상이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보통 상을 주더라도 큰 무리가 없는 상들이 있잖아요.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누가 봐도 이견이 없을 만한. 대중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은 영화에 상까지 주는 큰 결정을 해 주신 것에 그저 감사해요. 현명한 결정 내려 주셨네요. 하하하."
-심사위원장이었던 최동훈 감독님이 흡족해 하겠어요. "최동훈 감독과 제일 친해요. 완전 절친이에요. 근데 최동훈 감독이 심사위원장인줄 몰랐어요. 당일 현장에서 뜬 사진을 보고 내심 놀라서 '뭐야' 했거든요. 그때까지 입도 아주 꾹 다물고.(웃음) 10년 전쯤 최동훈 감독과 각종 시상식 후보에 올라 짝꿍처럼 참석했어요. 여길 가도 있고 저길 가도 보이는 거예요. 그러다 말을 트게 됐고 '술이나 한잔 할까요?' 하면서 친해졌죠. 여전히 가장 많은 응원과 가장 많은 조언을 해주는 멋진 친구이자 대단한 감독이에요."
-소감은 속 시원하게 말했나요. "집사람·어머니·딸내미. 호명된 순간 떠오른 무서운 분들이죠.(웃음) 이 분들 말했으니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죠. 지금 딸내미가 두 돌이 채 안 됐는데 '얼마예요?'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오곤 해요. 물론 이모랑 같이 가지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아쉽게도 이춘기라 예전처럼 아빠만 보면 끌어 안거나 뽀뽀를 해주지는 않아서 엄청 상처받고 있지만 아장아장 걷고 뛰는 것만 보면 행복하죠."
-최근엔 함께 보낼 시간이 많이 없었겠어요. "전혀요. '신과함께-죄와 벌' 개봉 시키자마자 '인과 연' 작업에 들어 갔으니까요. 다른 일반적인 영화들보다 준비할 사항도 많아서 끝없이 작업할 수 밖에 없었죠. 아내와 딸에겐 많이 미안해요."
-'신과함께-인과 연'은 만족스럽나요. "1년을 더 만져도 아쉬울 거예요. '더 예민하게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젠 더 이상 고칠 수도 없으니까요."
-1·2편 동시 촬영에 1편이 워낙 잘돼 '여유롭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고민은 질이 변할 뿐이지 양은 똑같이 채우고 살아요. 그걸 욕심으로 치부하기는 그렇지만 어느 순간엔 책임으로 바뀌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신과함께'를 함께 만들었고, 무엇보다 높은 비율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1부를 잘 봐 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만들어도 2부 역시 욕 먹을 것 같기는 한데(웃음) '할 만큼은 했다' 싶어요."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