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엉겁결에 '도라지(담배) 홍보대사', 현재는 비공식 '막걸리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신하균(44)이다. 연예계 대표 주당이자 막걸리를 사랑하기로 유명한 배우인 만큼 입소문이 난 막걸리 맛집을 취중토크 장소로 잡았더니 "원래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심지어 '신하균 지정 자리'가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막걸리를 바라보는 '꿀 떨어지는' 눈빛은 진정한 음주 토크의 서막을 알렸다. 아니나 다를까, 신하균은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된 뒤 오프닝 30분 동안 끊임없이 '막걸리 예찬론'을 펼치며 막걸리 두 통을 가볍게 비워 냈다.
"제가 소주는 잘 못 마시는데 막걸리는 '많이' 마셔요. 한 10통 정도 마시는 것 같아요. 요샌 제주도 막걸리에 푹 빠졌어요. 영화 '올레(채두병 감독)'를 찍으면서 제주도에 꽤 오래 머물렀는데 그 때 이 막걸리를 매일 마셨죠. 싸기도 엄청 싸고 맛있어요. 막걸리 광고요? 광고를 할만한 시장이 아니라 아쉽죠. 죽어가는 전통주 시장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술자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막걸리를 권하며 광고 아닌 광고를 하고 있죠. 술 사업은 전혀 관심 없어요. 연기 하나 하기도 벅찹니다."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이병헌 감독)'을 마무리 짓고 '나의 특급 형제(육상효 감독)' 크랭크인까지 시켜놓은 후 다소 여유로운 시기 만난 자리. "근데 무슨 말 해야 돼요?"라고 난감해 하면서도 신하균은 조근조근, 조잘조잘 속풀이부터 TMI(Too Much Information)까지 꽤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살다보니 융통성도 생기고, 유연해지고, 말도 많아지네요. 옛날에는 인터뷰 하면 하도 쓸 말이 없어 피우던 담배 이름인 '도라지'가 제목에 떡하니 쓰였거든요." 과거 말 없는 배우, 인터뷰 하기 힘든 배우로 손 꼽혔던 신하균은 더 이상 없다. 최근 영화 홍보 인터뷰에서도 놀라운 입담을 뽐내기 시작한 신하균은 술이 한 잔 들어가자 얼굴만 거리감 느껴지게 잘생긴 신하균일 뿐 더할나위없이 친근한 매력을 뽐냈다. "실시간 라이브 영상를 키고 싶게 만든다"는 말에 신하균은 "에이, 이런 모습은 또 쉽게 보여줄 수 없지~"라며 신나게 술잔을 홀짝거렸다.
B급 감성 소유자임을 인정하고, 후배들에게는 '만만한 선배'가 되고 싶다는 의외의 속내는 배우 신하균을 다시 보게 만드는 포인트들이었다. 애니메이션과 피규어를 좋아하는 소년 감성과 '집돌이' 성향은 여전하지만 술이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는 애주가. 낯을 가려도 사람 만나는 것을 굳이 꺼려하지 않는 '자유 영혼' 신하균은 작품을 택할 때도 크기와 비중을 떠나 스스로의 컨트롤과 공감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달려 온 20년은 신하균이라는 이름에 '신뢰'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신하균의 차기작은 BBC 드라마 '루터(Luther)'의 한국 리메이크작. 신하균은 극중 노련한 강력계 형사이자 선악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고독한 형사 우태석 역을 맡는다. 이 작품 역시 신하균의 마음을 이끈 이유가 있을 터. 살짝 취기가 오른 후 "취중토크 하면서 이렇게 취한 사람이 있냐"고 되물은 신하균은 "뭔가 아쉬운데 '나의 특급 형제' 개봉 땐 (이)광수랑 같이 볼까요?"라며 먼저 약속을 정해 쾌재를 부르게 했다. 그리고 다시 향한 시선은 역시 '사랑스러운' 막걸리. 신하균의 '네버엔딩 음주강의'는 세 시간 넘게 이어졌다.
-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소주는 잘 못 마시고 막걸리는 많이 마셔요. 10통도 마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예전만큼 못 마시겠더라고요. 졸려서 집에 들어가야 해요."
- 제주산 막걸리를 좋아하네요. "영화 '올레'를 찍으면서 제주도에 오래 있었는데, 이 막걸리를 매일 마셨어요. 감귤이나 땅콩, 이런 게 섞인 막걸리는 달아서 못 먹어요. 섞인 건 안 좋아해요."
- 막걸리 광고를 노리는 건 아닌가요. "막걸리는 광고할 만한 시장이 아닐 거예요. 죽어 가는 우리 전통주 시장을 위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광고하고 있어요.(웃음)"
- 막걸리의 맛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대학생일 때는 술을 못 마셨어요. 싫어했어요. 돈이 없던 시절이니까 선배들이 싸고 양이 많은 막걸리를 먹였거든요. 나는 마트에 가는 걸 좋아해요. 한동안 막걸리를 먹지 않다가 30대 초반에 마트에 갔더니 막걸리가 눈에 띄더라고요. '마셔 볼까?' 싶어 '혼술'을 시도해 봤죠. 그러다가 막걸리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이후엔 양조장에서 직접 막걸리를 주문해 먹기도 하고 공부도 했죠."
-막걸리 사업을 해도 되겠어요. "에이, 즐기기만 하죠. 이거(연기) 하나 하기에도 힘들어요."
- 즐기는 술이 또 있나요. "고량주도 좋아해요. 먹으면서 술이 깨잖아요.(웃음) 위스키도 즐겨 마시고요. 소주 빼고는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소주는 희석식이 아닌 증류주는 좋아하는 편이에요."
- 술버릇이 있나요. "예전에는 술을 마시고 집에 오면 꼭 냉장고에 소주가 들어 있었어요. 그런 술버릇이 있었죠. 술을 먹고 집까지 오면 술이 다 깨잖아요. 당시 소주는 도수가 높았는데도 잠이 안 오니까 소주 두 잔을 '원샷' 하고 잤어요. 못 할 짓이죠. 정말."
-말이 없기로 유명한데 점차 인터뷰에 능숙해지는 것 같네요. "예전보다 유연해지고 편해졌어요. 말도 많아졌고요. 예전엔 워낙 말을 안 했으니까요."
- '바람 바람 바람'에 함께 출연했던 이성민 배우는 '신하균이 나보다 사회성이 5배는 많다'고 평가하더라고요. "(이)성민 선배님은 유부남이고 가정이 있으시니까요. 어울릴 수 있는 폭이 좁죠. 그런데 나는 술을 '잘' 마셔요. 연락이 오면 마다하지 않아요. 내가 먼저 연락을 안 해서 그렇죠. 어느 시기에 사람들이 나를 찾는 횟수가 많아지는 때가 있어요. 연락이 확 몰린달까요. 그러면 나는 이 술자리 저 술자리 다니느라 바빠져요. 뭐, 굳이 찾지 않으면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약속이 밀릴 때는 양해도 구하고 그러죠. 맞아요. 나 되게 수동적으로 살아요.(웃음)"
-그래서 동료 배우들이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고 말하나봐요. "아니 뭐 내가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지? 하하하."
- 후배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스타일이라고요. "만만해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요. 후배들과 있으면 더 조심하게 돼요. 잘해 주려고 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느낄지 나도 잘 모르겠네요. 먼저 술자리를 주선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요즘엔 촬영이 끝나면 '술 한잔하고 가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해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불만은 없는지 궁금해요. 술이 안 들어가면 말하기 힘든 것들이 있잖아요. ('나의 특급 형제' 육상효) 감독님이 연세가 많아요. 계속 어린 감독들과 하다가 오랜만에 나이가 많은 분과 작업해요. 그러니까 어린 후배들의 생각이 더 궁금해져요. 편하게 이야기하려면 막걸리라도 한잔해야죠. 그게 불편하진 않겠죠? 아닌가? 불편한가?(웃음)"
- 선배가 되면 더 고민이 많아지죠.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요. '나의 특급 형제'를 찍으면서 '바람 바람 바람'을 함께한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 특별 출연 촬영을 잠깐 하고 왔어요. '극한직업' 팀은 나이가 다 어린 편이에요. '나의 특급 형제'에 오니 감독님은 대선배님이고 스태프들도 나이가 많은 편이라 오히려 더 편하더라고요."
- 외로움을 타지 않는 것 같네요. "딱히 외롭지 않아요. 집에서 혼술도 자주 하고요. 혼자 있으면 나름대로 재미있어요. 혼자서도 할 게 많잖아요.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요. 그리고 TV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뉴스도 보고 예능 프로그램도 보지만 드라마는 안 봐요. 연속해서 드라마를 보는 게 힘들더라고요."
- MBC '나 혼자 산다' 같은 리얼리티 예능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요. "아마 내가 그런 예능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긴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중요한 건 가족과 함께 살아서요."
-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나요. "한집이긴 한데 내가 쓰는 층에서 독립적으로 살아요. 촬영하느라 집에 있기보다 밖에 계속 머물기도 하고요. 오히려 내가 부모님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요. 밥을 제때 먹을 수 있으니까요. 사실 함께 산다고 하지만 가족과 말을 많이 하진 않아요. 집에 가면 말을 한마디도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