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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27. 태풍이 지나간 뒤
제19호 태풍 '솔릭'은 예상보다 조용히 지나갔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태풍이 지나간 뒤 전국적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져 도시는 때아닌 물난리가 났다. 도로가 침수돼 곳곳이 통제됐고 저지대는 집 안까지 물이 들어찼다. 추석 대목을 기대했던 과수 농가는 물 폭탄에 떨어진 과일 때문에 절망감만 가득했다.
태풍 솔릭이 상륙하기 직전, 한반도는 그야말로 태풍 전야였다. 태풍은 육지보다 먼저 제주도에서 위용을 떨쳤다. 가로수로 심어 놓은 야자수들은 힘없이 꺾였다. 중앙분리대가 무너졌고, 유명 관광시설의 동상이 쓰러졌다.
육지에서는 학생들의 안전 때문에 일제히 휴교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태풍보다 무서운 육아 문제가 닥치고 말았다. 학교도 어린이집도 문을 닫은 상황에서 아이를 급하게 맡길 만한 곳을 찾는 일은 힘들었다.
수도권을 강타할 것이라던 태풍은 한참 해상에서 머물다가 목포에 상륙했다. 경기도 화성 지역에 상륙한다는 태풍은 충남 보령, 전북 군산에서 전남 목포까지 내려왔다. 태풍의 강도는 예상보다 약했으며, 강수량도 적었다. 태풍 솔릭은 농담처럼 ‘선풍기 3단 세기’ 정도인 바람과 해갈하는 데 많이 부족해 보이는 비를 뿌린 채 힘없이 한반도를 벗어났다.
제19호 태풍 솔릭을 한국·일본·미국이 앞다퉈 예보했지만 그 어떤 예보도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 예보가 아니라 중계방송 수준이었다. 태풍의 북상을 대비해 창틀에 테이프를 붙이고, 창문을 신문지로 발랐던 국민들은 허탈해했다. 더운 여름에 창문까지 닫고 잤지만 밤새 약한 비만 내렸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
1959년 9월이었다. 태풍 '사라호'는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전후 가난했던 나라에 겨우 올린 초가집 지붕들은 태풍 사라호의 비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날아가고 무너졌다. 태풍 사라호는 1분 평균 최대 풍속 초속 85m, 평균 초속 45m, 최저기압은 952hPa을 기록했다. 당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최저기압이었다.
국민들은 사라호 태풍이 어떤 태풍인지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지금처럼 태풍이 생성되자마자 끊임없이 예보하며 주의를 당부하는 정보가 없었다. 신문조차 귀했던 시절, 하루 밥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던 우리나라를 강타한 사라호는 사망·실종 849명, 이재민 37만3459명, 총 1900억원(1992년 화폐 기준) 재산 피해를 남기고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과거 기록을 보면 태풍보다 태풍이 지나간 뒤 더 큰 피해를 입은 적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태풍이 사라지고 폭우로 인한 피해가 이어 올 것을 예감했지만 하천이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한반도의 오염된 자연환경이 새삼 우려됐다. 북한은 환경오염이 심하다. 무분별한 환경 파괴도 있지만 문제는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오염이다. 좁은 국토에서 수없이 진행해 온 핵실험 탓으로, 오랫동안 북한 전역은 방사능에 오염돼 왔다.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오염 물질이 어디로 갈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정부는 남북의 DMZ GP를 구역별로 철수할 것을 북한에 제안한다고 했다. 한반도서 유일한 자연 청정 구역인 DMZ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북한의 방사능오염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 수준이 발달돼 있다고 해도 태풍의 진로 하나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을 뛰어넘는 영역에 있다. 북한의 오염된 자연환경을 정화하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