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본다, 믿고본다" 했더니 또 믿고 볼 수 밖에 없는 작품을 내놨다. 신뢰에 금 가는 일은 결코 없다.
영화 '협상(이종석 감독)'은 10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공식 언론배급시사회를 진행, 추석 시즌을 노린 19일 개봉작 중 가장 먼저 베일을 벗었다. 무려 세 편의 영화가 한 날 한 시 맞붙는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만큼 현장에는 '협상'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경쟁작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해 매의 눈으로 완성작을 지켜봤다.
결과적으로 '협상'의 자신감은 곧 '협상'이었다. '협상'은 태국에서 사상 최악의 인질극이 발생하고, 제한시간 내 인질범 민태구(현빈)를 멈추기 위해 위기 협상가 하채윤(손예진)이 일생일대의 협상을 시작하는 범죄 오락 영화다. 상업 영화라는 큰 범위로써의 재미, 배우들의 극강 케미와 범죄 오락이라는 장르적 요소에서 발전된 신선함까지 뭐 하나 쉽게 놓친 구석이 없다.
특히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난 손예진·현빈의 케미만큼 궁금증을 자아낸 이원촬영 기법은 어느 한 장면에 집중된 것이 아닌, '협상' 전체를 지배하고 이끈다. 범죄 오락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류의 이전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스케일 큰 액션신보다 협상가와 인질범의 대화, 그리고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대화가 영화의 90%를 차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신선도가 쫄깃한 긴장감과 함께 맛깔스러운 '협상' 만의 매력을 자랑한다. 대사 하나 놓칠새라 몰입도는 자연스럽게 끌어 올려진다. 여느 범죄 오락 영화와 결을 달리 한다 말할 수 있는 이유이자, 매 작품 새로운 도전에 관심을 보이는 현빈과 손예진이 왜 '협상'을 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극중 모니터를 배제하고 '단 한 번' 마주치는 현빈과 손예진은 그래서 더 대단한 연기를 펼쳤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케 한다. 손예진은 경찰로서의 사명감, 인질범을 상대하는 협상가,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까지 널뛰는 감정선을 억누르며 명불허전 손예진의 내공을 펼쳤고, '공조(김성훈 감독)', '꾼(장창원 감독)'을 통해 범죄 오락 액션물을 맛 봤던 현빈은 자리를 옮겨 인간미를 담보로 한 서늘한 미치광이 인질범 캐릭터를 오로지 현빈 만의 색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협상'은 한국 영화 최초로 협상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이 괜찮은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을 엿보이게 한다. '협상을 통해' 키워지는 판의 재미, '대체 어디까지 타고 올라갈래?' 싶을 정도로 얼히고 설킨 추악한 관계성을 파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재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갖췄다는 뜻이다. 역사물, 시대물만 소재에 대한 예의를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제작진의 영리함까지 완벽하게 담겼다.
'협상'은 상업영화 명가 JK필름의 20번째 작품으로 남다른 의미를 더한다. JK필름은 '해운대(윤제균 감독)'와 '국제시장(윤제균 감독)'으로 두 편의 1000만 영화를 탄생시켰고, '댄싱퀸(이석훈 감독)', '히말라야(이석훈 감독)', '공조', '그것만이 내 세상(최성현 감독)' 등 대중성과 진정성을 갖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이며 전 세대 관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협상'에 대한 믿음의 뿌리는 바로 매 작품마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JK필름의 역사에 있다.
'협상'은 추석시즌 '물괴(허종호 감독)', '명당(박희곤 감독)', '안시성(김광식 감독)' 등 쏟아지는 사극물 속 유일한 현대극으로 장르적 다양성의 중심에 설 전망. 명절엔 사극? 올 추석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통해도 모든 작품이 그 수혜를 입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눈 높아진 관객들의 선택 0순위는 결국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 가치있는 영화다. 흥행 넘버원이 될 준비를 깔끔하게 끝마친 '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