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성곡댐 앞. 어느 날 조용하던 한 마을에 커다란 철가방 하나가 불쑥 등장한다. 반쯤 열린 철가방에선 자장면이 쏟아지고…. 젓가락, 후추통 등이 흩어져 있다. 아마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제일 큰 철가방이다. ('철가방 극장' 소개 中)
'웃음을 배달한다'는 발상으로 경북 청도군에 전국 최초의 개그 전용 극장 '철가방 극장'을 만들었던 원로 개그맨 전유성(69)씨. 그가 최근 10여 년간 살았던 청도군을 떠났다. 그는 2007년 청도군으로 이사해 2009년 복날 희생된 견공들을 위로하기 위한 콘서트인 '개나 소나 콘서트'를 열고 2011년 '철가방 극장', 2015년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 등을 기획해 한적한 시골 마을을 웃음으로 들썩이게 했다. 그런 전씨가 청도군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전씨는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청도군과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 개최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며 "더는 청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15년 시작한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코아페)는 군이 주최하고 전씨가 축제조직위원장을 맡아 공연을 기획했다. 전씨의 도움으로 SBS '웃찾사'팀 등 국내외 유명 개그맨들이 출연했다. 개그맨 김현철씨가 크레인에 매달려 등장하고 소싸움에 지친 황소가 나오는 등 이색적인 연출로도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에는 우천에도 27만명이 청도군을 찾아 야외공연을 관람했다.
문제는 올해 축제 개최 준비과정에서 청도군이 3년간 축제조직위원장을 맡은 전씨를 배제한 채 별도의 기획사를 선정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7월 청도군은 '제4회 청도 코아페'(10월 12~14일)의 준비를 전씨와 사전 협의 없이 다른 업체에 맡겼다. 전씨가 이에 대해 군에 묻자 "왜 설명해야 하느냐"는 말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전씨는 "속상한 수준을 넘어 모욕감을 느꼈다"며 "지난해 후배 개그맨 심형래씨와 이영자씨가 와서 출연료도 거의 받지 않고 비를 맞으며 2시간 동안 행사에 참여했는데, 선배의 부름에 달려왔던 후배들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청도군 관계자는 "올해부터는 군이 축제 운영비를 직접 집행하기로 하면서 기획사 선정 등의 관련 사항이 변경됐고, 이를 전씨에게 알리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지난 22일 전북 남원시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고민 중"이라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철가방 극장이 재개관할 경우 개그 콘텐트를 만드는 데는 도움을 주겠다. 철가방 극장에는 애정이 많다"고 했다. 전씨는 2007년 전원생활을 하려고 청도에 내려왔다가 사단법인 '코미디 시장'을 만들었다. 재능 기부 형태로 농촌 활성화를 해보자는 주변의 권유에서였다. 2009년부터 주말마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개나 소나 콘서트'를 열었다. 2011년 5월 개관한 철가방 극장은 풍각면 성수월마을이 건설로 수몰되면서 농촌종합개발사업에 따라 청도군과 농림수산식품부가 예산 12억원을 지원해 건립됐다. 개관 이후 4400여 회의 공연을 선보여 20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전국의 개그맨지망생을 모집해 실전 연기수업을 실시해 신인 개그맨을 배출하기도 했다. 철가방 극장은 최근 단원 수가 크게 줄면서 공연을 꾸리기 어렵게 되자 지난 4월 29일 공연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전씨는 "SBS, MBC 등 개그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개그 프로그램이 줄어드니 개그맨 지망생도 줄었다. 단원수를 유지하며 공연을 해서 최저 임금이라도 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는데 어렵게 됐다. 철가방 극장에는 언제든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