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을 처음 본 것은 한화 감독을 맡았던 지난 2005년 6월이었다. 생방송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TV를 켰더니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를 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경기는 인천 동산고와 서울 성남고가 대결하는 8강전이었다. 동산고에 재학중이던 류현진은 그 경기에서 9이닝 17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기록했다. 현장에서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공이 꽤 빨랐고 재능이 느껴졌다. 이후 스카우트 파트에서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고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류현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다. 그리고 류현진은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2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심상치 않았다. 그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회 대회 감독을 맡았고 대표팀 훈련이 일본 후쿠오카에서 진행됐다. 하와이에서 열린 구단 스프링캠프를 이끌다 대표팀에 왔기 때문에 코치진을 통해 훈련 상황을 따로 보고받았다. 류현진에 대한 내용이 좋았다. 내가 보고 느꼈던 것이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WBC가 끝나고 팀에 복귀하니 시범 경기가 막 시작됐는데 류현진은 첫해부터 18승을 거두며 활약했다. 그해 한화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여러 선수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줬지만 '신인' 류현진은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류현진은 내가 현장을 떠난 뒤에도 간혹 연락했다. 그가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제자 덕분에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런 인연이 계속되면서 그의 결혼식 주례까지 맡았다. 언변이 없어서 계속 사양하다가 첫 주례를 했는데 주례사로 '미국에 가서 매번 승리했을 때 전화했는데, 지난해 5승을 해 5번을 (전화)했다. 금년에는 13~15승을 해서 그 정도 통화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하지만 올해 류현진은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허벅지 부상으로 3개월 정도 팀을 이탈하면서 승 수 쌓기에 애먹었다. 그러나 복귀 이후 완벽한 모습을 보여 줬다.
지난달 18일 콜로라도전이 끝난 뒤에도 그와 통화했다. 그 경기에서 구속이 평소보다 더 잘 나오기에 그 이유를 물어봤다.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힘껏 던졌다"고 하더라. 다음 등판인 샌디에이고전 이후 타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7승으로 시즌을 끝내라"는 덕담도 해 줬다. 정규 시즌 마지막 등판인 샌프란시스코전에선 걱정이 많았다. 1회부터 구속이 떨어져 보였다. 결국 2회에 홈런을 맞더라. 경기 이후 "홈런을 맞은 게 높은 쪽 컷패스트볼이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홈런을 맞은 뒤 경기 내용이다. 완벽에 가깝게 샌프란시스코 타선을 6회까지 틀어막았다. LA 다저스는 류현진의 호투 덕분에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고, 개인 기록도 평균자책점을 1.97까지 낮췄다.
투수와 타자는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경기를 버텨 낼 수 있는 선수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막중한 부담감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올해 좋은 모습을 보인 로스 스트리플링 등은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 반면 류현진은 다르다. 포스트시즌은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경기다. 경기 전후의 부담감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류현진은 많은 경험을 통해 노련하게 피칭한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살얼음판 승부인 포스트시즌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 2005년 6월에 봤던 고교 투수 류현진에게 느꼈던 잠재력이다. 이는 높이 평가해야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