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권 대회를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 위주의 대표팀을 구성하기 시작한 것은 2000 시드니올림픽부터다. 이후 대표팀이 호성적을 거둔 대회에서 10년 넘게 선발투수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는 손에 꼽힐 정도다. 류현진(LA 다저스)과 김광현(SK), 마무리 투수는 오승환(콜로라도)이 있다.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좌완 투수 구대성이 동메달을 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아마추어 선수로 선발된 정대현도 장래성을 보여 주는 인상적 호투를 펼쳤고, 이후 대표팀에 선발될 때마다 좋은 모습을 남겼다.
2006년에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박찬호와 김병헌·서재응·봉중근·김선우 등 빅리그 출신들이 마운드의 주축이었다.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로 돌직구의 진수를 보여 줬다. 당시 미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벅 마르티네즈 감독은 "오승환은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통하겠다"며 굉장히 호평했다.
전승 우승을 차지한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김광현이 일본 킬러, 결승전에서는 류현진이 쿠바 격파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또 교체 선수로 뽑힌 윤석민이 중간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2009 WBC에서는 일본전을 비롯한 대회 내내 봉중근과 정현욱의 눈부신 투구가 대표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역시나 윤석민도 좋았다.
초대 챔피언에 오른 2015 프리미어 12에선 뚜렷한 투수가 없었으나 물량 공세 작전으로 나섰고, 결정적일 때 김광현과 장원준·차우찬이 해 줬다.
10년여 동안 대표팀 마운드는 몇몇 선수들에게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대표팀 마운드를 보면,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이렇다 할 새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는 11월 올림픽 예선을 겸한 프리미어 12가 개최되고, 내년에 도쿄올림픽이 열린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대표팀에서 장래성을 입증할 수 있는 투수를 눈여겨봐야 한다.
롯데 윤성빈(왼쪽)과 키움 안우진. 롯데자이언츠·IS포토
현재 KBO 리그에서는 좋은 자질을 갖춘 우투수가 있다. 올해 프로 3년 차를 맞는 롯데 윤성빈은 지난해 2승5패 평균자책점 6.39로 큰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지만 197cm ·90㎏의 체격 조건에 좋은 공을 갖고 있다. 키움 안우진은 프로 데뷔 전 논란을 떠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윤성빈과 안우진 모두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공을 던질 줄 아는 데다 공에 무게감도 있다. 스플리터의 위력도 좋다. 두 선수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우타자의 몸 쪽으로 향하는 투심패스트볼의 제구력이 뒷받침된다면 훨씬 더 좋은 기량을 선보이지 않을까 싶다. 또 두산 곽빈은 슬라이더와 커브가 뛰어나고, kt 김민 역시 신예로 가능성이 엿보인다. 올해 신인 가운데 기대를 모으는 선수도 여럿 있는 만큼 뚜껑을 열었을 때 좋은 자원이 나왔으면 한다.
태극마크를 달고 류현진·김광현·오승환처럼 오랜 기간 한국 야구를 이끌려면 몸 쪽 제구가 필요하고, 자신의 공을 자신 있게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마이너리그 유턴파 출신인 1988년생 정영일은 나이가 좀 있지만 지난해 포스트시즌(8⅔이닝 4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 때 기량만큼 보여 준다면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충분히 상대에게 위협을 줄 만한 투수로 여겨진다.
그동안 대표팀의 성적을 책임진 마운드는 대부분 좌투수 위주였는데, 특이한 점은 최근 KBO 리그에서 싹수를 보이는 신예들은 대부분 우투수다.
새롭게 선임된 김경문 대표팀 감독과 코칭스태프·기술위원회가 대형 투수로 성장 가능성과 재목을 잘 체크해야 한다. 또 소속팀에서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이들의 성장세가 달려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