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의 미션힐스골프장(파72)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
우승을 차지한 고진영(24·하이트진로)은 끝내 눈물을 왈칵 쏟았다. 챔피언 퍼트를 한 뒤 골프 채널과 인터뷰한 그는 “(지난해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우승을 할아버지께 바친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자신을 유독 아꼈던 할아버지(고익주 옹)의 1주기(4월 10일)를 이틀 앞둔 8일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고진영은 이날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3개로 2언더파를 기록,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3월 말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한 뒤 2주 만에 시즌 2승째, 통산 4승째다.
최종 라운드의 코스 세팅은 매우 까다로웠다. 그러나 시즌 5개 대회에 출전해 네 차례나 '톱3'에 든 상승세의 고진영에게 어려운 핀 위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인경(31·한화큐셀)에 1타 차 선두로 출발한 고진영은 2번홀(파5)에서 2m짜리 첫 버디를 잡았다. 5번홀(파3)에서도 4m 버디가 나왔다. 동반 플레이를 펼친 김인경은 샷감이 흔들리면서 전반 9홀에서 버디 없이 보기만 1개를 범하며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고진영에게도 위기가 왔다. 8번홀(파3)에서 그린을 놓친 뒤 프린지 근처 긴 풀 위에서 퍼트를 잡았다가 3퍼트 보기를 했다. 고진영은 파5, 11번홀에서 버디를 잡았지만 이어진 13번홀에서 티샷을 러프에 빠뜨려 보기, 15번홀(이상 파4)에서는 두 번째 샷을 벙커에 빠뜨려 보기를 했다. 추격자인 이미향(26·볼빅)과 간격은 1타 차까지 좁혀졌다.
고진영의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이 돋보인 것은 이때부터였다. 고진영은 16번홀(파4)에서 3m가량의 버디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2타 차 선두였던 고진영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3m 버디로 이미향에게 3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직후 한동안 울먹였던 고진영은 자신의 캐디와 매니저와 함께 18번홀 그린 옆에 위치한 포피스 폰드에 뛰어드는 세리머니로 눈물을 씻어 냈다. ANA 인스퍼레이션의 상징이기도 한 포피스 폰드에는 고진영과 그의 할아버지 스토리와 비슷한 ‘손주 사랑’ 이야기가 녹아 있다.‘포피(Poppie)’는 과거 이 대회 진행 책임자였던 테리 윌콕스의 손주들이 윌콕스를 칭했던 명칭이다.
고진영은 지난해 LPGA 투어에 데뷔하기 전에도 인터뷰하면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다. 병상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를 염려했다. 지난해 LPGA 투어에 데뷔한 고진영은 롯데챔피언십 출전을 앞두고 하와이에서 훈련 도중 할아버지의 작고 소식을 듣고 대회 출전을 취소하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고진영은 “할아버지가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살아 계셨다면 많이 좋아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LPGA 투어에 데뷔해 신인상을 수상한 고진영은 올 시즌 무서운 질주를 하고 있다. 이번 우승까지 올해 출전한 6개 대회에서 2승을 포함해 무려 다섯 차례나 ‘톱3’에 들었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달성한 고진영은 우승 상금 45만 달러(약 5억1000만원)를 받으면서 다승과 상금 랭킹, 올해의 선수 부문 등에서 압도적 1위로 나섰다.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2004년 박지은, 2012년 유선영, 2013년 박인비, 2017년 유소연에 이어 다섯 번째다. 고진영은 “호수의 여왕이 되기 위해 5년을 기다렸다. 언젠가 뛰어들고 싶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실현돼 정말 기쁘다”며 “겨울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다. 나뿐 아니라 코치와 매니저와 트레이너 등이 모두 열심히 했기 때문에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그간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