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환희였던 2002년. 그해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남자 축구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축구의 변방으로 평가받던 아시아 국가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세계적 강호들을 연파하며 4강에 올라섰다. 포르투갈·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등 강호들이 한국의 투혼과 원 팀에 무너졌다. 세계 축구는 한국을 극찬했고,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드높였다. 이로 인해 한국은 붉게 물들었다. 거리에는 수백만의 인파가 운집해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 축구가 이토록 뜨거웠던 적은 없었다.
너무나 강렬했던 2002년의 기억. 이후 한국 축구는 항상 2002년을 회상했다. 한국 연령별 대표팀이 FIFA 주관 대회에 나설 때마다 '어게인 2002'를 기다렸다. 하지만 현실로 등장하진 못했다. 세계의 벽은 너무나 높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축구는 조금씩 현실에 만족해야 했다. 5년, 10년 그리고 15년이 넘게 흐르자 2002년은 한국 축구 역사상 단 한 번의 환희였다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오히려 2002년 한 번의 환희를 그만 우려먹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지속적으로 연령별 FIFA 월드컵이 열렸지만, 기대감은 없었다. 쉽게 '어게인 2002'를 외치는 분위기도 사라졌다. 한국 축구에 다시는 이런 영광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2019년. 2002년 영광이 흐른 지 17년이 흐르자 드디어 다시 한 번 찾아왔다. 2002년만큼의 환희가 한국을 뒤덮었다. 2019 FIFA U-20 월드컵. 한국은 뜨겁게 변했다. 한국은 붉게 물들었다. 한국의 거리에는 "대한민국!"을 외치는 국민으로 붐볐다.
사실 큰 기대를 받지 못한 팀이었다. 이강인(발렌시아)을 제외하고 스타 선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정용 감독 역시 스타 감독 출신이 아니다. 그리고 포르투갈·남아프리카공화국·아르헨티나와 F조, '죽음의 조'에 속했다. 이들을 2002년 신화를 이어 갈 기대주로 보는 이는 없었다. 조별리그 통과도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1차전에서 포르투갈에 패배하자 이런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2차전부터 반전이 일어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잡은 뒤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무너뜨렸다. 아르헨티나 격침으로 상승세를 탄 한국. 16강에서 난적 일본을 잡았다. 8강이 결정적 경기였다. 세네갈을 상대로 역대급 기적의 승부를 연출하며 승리를 쟁취했다.
2002년 분위기를 드러낸 것은 이때부터였다. 세네갈전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한국 축구팬들이 바라는 모습이 완벽하게 녹아든 한판이었다. 투지와 열정 그리고 태극마크의 자긍심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모습을 그들이 연출했다. 1983 U-20 월드컵과 2002 월드컵에 이어 한국 남자 축구에서 역대 세 번째로 4강에 진출했다. 국민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가 뒤에 붙자 그들은 더욱 거침없이 질주했다. 국민이 한마음과 한목소리로 지지하면 최강 팀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4강에서 에콰도르를 무너뜨리며 한국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17년 전,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영광을 품은 선배들도 해 보지 못한 결승 진출. 게다가 홈이 아니라 저 멀리 폴란드라는 타지에서 이룩한 성과. 한국 국민은 거리로 쏟아졌다. 대한축구협회와 서울시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결승 단체응원전을 개최했다. 또 서울의 강남역과 청량리역 광장 그리고 수원·부산·대전·대구·광주·강릉 등 전국 각지에서 응원 물결이 거리를 수놓았다. 한 시청률 조사 회사에 따르면, 결승 방송 3사 실시간 통합 시청률은 무려 42.5%였다. 한국이 새벽 시간대였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열풍이라고 할 수 있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런 많은 기대 속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1-3으로 패배했다.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향해 비난하지 않았다. 2002 월드컵 4강에서 독일에 0-1로 졌을 때와 비슷하다. 이 무대에 올라오기까지 너무나 힘들었던 것을 알기에, 그들의 노력과 열정을 느꼈기에, 그래서 너무나 자랑스럽기에 졌지만 이들은 찬사받았다. 거리로 뛰쳐나온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국민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특히 정정용호는 원 팀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줬기에 국민은 패배에 아픔보다 감동을 받았다. 2002년에 버금가는 열기와 행복을 선물한 것에 고마움을 전했다. 2002년 대표팀만큼 국민이 원하는 팀의 정석을 보여 줬기에 실망은 없었다.
기록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한국 최초의 FIFA 대회 결승과 U-20 월드컵 결승 역사상 아시아팀 최초의 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이강인의 한국 최초 FIFA 골든볼(MVP) 수상은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일이다. 한국이 세계 1위 선수를 배출한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리고 당당한 세계 2위. 한국 축구가 FIFA 대회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선물했다. 한국 축구 역사의 흐름과 인식을 바꾼 것이다. 이들로 인해 한국 축구는 분명 한 단계 이상 발전했다.
환희와 기쁨으로 끝낼 순 없는 일이다. U-20 월드컵 준우승과 함께 한국 축구는 또 하나의 과제를 안았다. 한국 축구가 세계 2위 성과를 낸 이들을 더욱 성장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2002년 4강 이후 박지성과 이영표 등 유럽에서 인정받은 스타 선수들이 등장했듯, 이들로 인해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했듯, 2019년 준우승 세대 역시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한국 축구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2019년으로 끝나지 않고, 이런 환희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