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끝난 2019 KEB하나은행 FA컵 8강전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한국 축구 최강을 가리는 컵대회라는 취지에 걸맞은 결과라면 결과겠으나, 최상위 리그인 K리그1의 부진이 여러모로 뼈아픈 과제를 남긴 결과기도 했다.
이번 대회는 K리그1 4개 팀, 내셔널리그 3개 팀, 그리고 K3리그 어드밴스 1개 팀이 8강을 치르게 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K리그1에서 우승 경쟁을 펼치는 상위권 팀들이 일찌감치 떨어진 데다 하부리그 팀들이 절반이나 8강에 올라 '한국판 칼레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의 목소리도 컸다.
결과적으로 한국판 '칼레의 기적'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4강에 진출한 4개 팀 중 절반이 하부리그 팀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8강전은 같은 홈구장을 사용하는 내셔널리그 창원시청과 K리그1 경남 FC의 경기 일정으로 2일과 3일로 나뉘어 열렸는데, 2일 열린 창원시청과 상주 상무(K리그1)의 경기에선 상주가 2-1 승리를 거두며 무난하게 4강에 안착했다.
그러나 3일 열린 경기에서 연달아 이변이 벌어졌다. 가장 먼저 열린 경남과 화성 FC(K3리그)의 경기에서 화성이 2-1 승리를 거두며 K3구단 사상 최초로 FA컵 4강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화성은 김종부 감독이 경남 사령탑으로 부임하기 전에 몸담았던 팀으로, 이 경기는 '김종부 더비'로 불리며 관심을 모았으나 결과적으로 김종부 감독은 전 소속팀에 일격당한 셈이 됐다.
K리그1 팀을 떨어뜨리고 4강에 오른 화성 FC의 뒤를 이은 건 내셔널리그 소속 대전 코레일이었다. 내셔널리그 6위에 처져 있을 정도로 최근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대전 코레일이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더구나 강원 FC는 주말 K리그1 19라운드 FC 서울전을 앞두고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는 '여유'를 부렸다가 0-2로 패하고 말았다.
4강엔 올랐지만, 내셔널리그 경주한수원을 상대로 안방에서 경기를 펼친 수원 삼성도 혼쭐이 났다. 수원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고,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노동건의 활약을 앞세워 3-1로 승리하며 힘겹게 살아남았다. K리그1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는커녕, 자칫하면 상주를 제외한 모든 K리그1 팀들이 탈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달 내셔널선수권대회를 마치고 긴 휴식 기간 동안 FA컵을 대비한 내셔널리그 팀들은 8강을 앞두고 단단히 벼르고 나섰다. 그러나 K리그1 팀들은 리그 일정과 FA컵을 병행하느라 대부분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 이변의 바탕이 됐다. 아무리 로테이션이 필수불가결이었다곤 해도, FA컵 우승에 걸려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을 생각하면 비중을 다르게 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축구 최상위 리그인 K리그1 소속팀들이 하부리그 팀들에 고전 끝 탈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리그의 자존심도 상처를 입었다. 경주한수원의 서보원 감독은 경기 이후 "K리그1·2 선수들이 좀 더 잘해야 한다"며 "국내 최고의 리그인 만큼 K리그 선수들이 확실히 한 단계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부리그 팀들이 맞부딪혔을 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부리그의 반란은 FA컵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 그 자체다. 힘겹게 8강을 거쳐 4강 진출의 역사를 쓴 대전 코레일과 화성 FC의 행보는 FA컵의 재미와 가치를 더 굳건하게 해 주는 의미 깊은 한걸음이다. 그리고 K리그가 이 짜릿한 '반란' 드라마에 희생되지 않고 최상위 리그의 자존심을 지키려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